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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현 시의원과 함께 고시조 읽기<12>
   
▲ 오강현 시의원

江山(강산) 죠흔 景(경)을 힘센이 닷톨 양이면,
내 힘과 내 分(분)으로 어이하여 엇들쏜이.
眞實(진실)로 禁(금)하리 업쓸씌 나도 두고 논이노라.                                    
 
<함께 감상하기>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힘센 사람이 서로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다툴 것 같으면 미약한 내 힘과 가난한 처지로서 어찌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얻을 수가 있겠는가? 정말 아무도 자연 구경을 금할 사람이 없으므로 나 같은 사람도 자연의 주인이 되어 마음 놓고 즐기며 노닐 수 있노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한가롭게 즐겨 보겠다는 심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 고답적 가풍(家風)은 사라지고 평민적인 솔직한 사고방식이 반영되어 있다. 이 시조는 또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주인이 있으나 오직 달과 바람만은 주인이 없어 아무나 자유롭게 즐긴다는 내용을 노래한 소동파의 ‘적벽부’를 연상하게 한다.
 
이 시의 작가가 중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시인은 자연이 양반 사대부들만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계층도 즐길 수 있는 것이라 하여 세속적 현실과 대비되는 자연의 한없는 너그러움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다.
 
지난 주말은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봄을 완연히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되어 장릉을 거닐며 잠시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집안에서 갇혀 사는 신세가 된 지 벌써 두 달 가까이 되어 간다. 개학이 연기되고 답답한 아이들과 부모들이 산책로에 많이 보였다. 아직 겨울의 끝자락이라 봄꽃이 피지도 나무가 푸르지도 않았지만 나무와 숲이 있는 숲길을 거닌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이럴 때 장릉과 같은 숲은 그 자체로 보물과 같다. 이 보물과 같은 자연을 특정한 사람들만 누리게 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런데 조금씩 걱정이 된다. 그 이유는 예전과는 다르게 점점 자연이 자본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먹는 물이 돈으로 거래되고 맑은 공기 또한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자연이 자본에 종속되어 돈 있는 사람은 자연을 더욱 자유롭게 향유하고 돈 없는 사람은 자연을 제한적으로 즐기게 되는 것이 점점 현실화 되고 있다. 즉 자연의 주인이 따로 있는 세상이 되고 있음에 서글픔을 금할 길이 없다. 적어도 내가 마시는 물과 공기만큼은 자유롭게 향유되길 바란다.         

오강현 시의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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