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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鄕愁)

            향수(鄕愁)
                                    박완규

비가 새끼줄처럼 허기를 매다는 저녁,
집안에 시래기 삶는 냄새 가득하다
 
어머니는 좁고 컴컴한 부엌에서
자주 시래기를 삶았지
검게 그은 어머니의 무명치마에서는
콜콜한 시래기 냄새가 묻어 있었지
나는 시래기죽이 끼니가 되는 게 싫어
투정을 부리곤 했지
 
시래기 냄새가 향기롭다고
시래기 된장국이 먹고 싶다고
그리워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던가
 
아내 몸에 뿌린 향수 냄새보다
더 좋아진 시래기 삶는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는 오후시간,
고향의 흙냄새, 어머니 냄새가
빗방울 되어 창가에 떨어져 내린다.
 
[작가프로필]
월간 [한맥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회원, 한국문협김포지부 이사, 김포문학상대상을 수상했다. 여러 문학문예지에 작품발표, [달시]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향詩香]
사람은 누구나 아득히 그리운 주머니 한두 개 정도는 달고 산다. 늦가을 여우비를 피해 옷섶을 털어내면 눈에 들어오는 처마에 매달린 시래기, 시인은 비 오는 날 시래기에 대한 애잔한 기억 하나를 끄집어낸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춘궁기의 저녁은 시래기죽 한 그릇이 끼니였던 때가 있었다. 작년 가을 춘천 가는 전철 안 몇몇 젊은 할머니들 참새 모이 쪼듯 웰빙웰빙 한다. 남춘천역 부근 어딘가 시래기 업은 코다리 찜은 벌써부터 펄펄 끓고 있었다. 낱잎 하나도 허투루 버릴 수 없었던 때와는 달리 요즘은 널따란 시래기용 청무 밭이 성업 중이다. 쌀 한줌 섞은 시래기죽, 쌀뜨물에 묵은 된장 한 숟가락 풀고 끓인 시래기국과 쓱쓱 조무린 시래기나물, 모두 다 어머니표 몸꽃인 것을, 한편 코로나19가 한시라도 빨리 땅 아래 깊숙이 파묻혔으면 좋겠다.
글 : 송병호 [시인]

박완규 시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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