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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에도 표정이 있다

       소리에도 표정이 있다
                                             민서현

쨍한 소리로 건너온 옹알이 한 소절
소리의 첫발을 방금 뗀
말도 아닌 투레질이 내 귀를 잡는다
물비늘 같은 잇몸을 드러낸 채 웃던
손녀가 건내 준
유리컵 하나와 종이컵 하나
유리컵을 두드리니
쨍, 유리컵의 목소리가 뛰쳐나온다
유리컵은 맑고 쾌활하다
짠, 종이컵을 두드리니
소리가 없다
종이컵은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종이컵은 시무룩하다
손녀는 소리가 없다고
냇물이 징검돌 건너가는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한다
우는 손녀를 달래다
다시 유리컵을 건배하듯 부딪친다
쩐, 순간 숨어 있던 소리가 튀어 나온다
울던 손녀의 얼굴에 꽃 한 송이 피어났다
 
[작가프로필]
[김포문학] 신인상 등단, 김포문협이사, 김포문학상, 바로니에백일장, 동서문학상맥심상을 수상했다. 동인시집 [척] 외 [김포문학] [글샘] 등에 작품발표, [달시] 동인.
 
[시향詩香]
"할아버지 줄 선물 샀어." 다섯 살배기 손주가 신나한다. "재하가 혼자 골랐어요." 새아기 귀뜸해 준다. 선물은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캐릭터가 그려진 장난감이다. 손주는 저녁 내내 '내' 선물을 가지고 놀았다. 이런 현상은 작가가 작품을 구상할 때 작품이 작품을 기억하는 자기방식을 취한 것과 유사하다. 시인은 눈에 넣어도 좋을 손녀와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놀아 주는 할머니는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쁘긴 해도 비위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리에도 표정이 있다.'는 진부한 것 같으나 상큼하다. 손녀와 할머니의 소리표정, 상상만으로도 정겹다. 소리 없는, 감정 없는 종이컵에 짠- 할머니의 재치 있는 건배에 눈물 고인 웃음꽃이 해맑다. 행복의 색깔은 인위적이지 않다. 자연색이다. 티 없이 고운 아가의 표정처럼 모두가 예쁜 꽃이었으면 좋겠다.
글 : 송병호 [시인]

민서현 시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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