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훈 동(한별정신병원장)

 코끼리와 장님의 우화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코끼리 구경을 나선 일단의 장님들이 각자 자기가 보고 체험한 코끼리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다리를 만진 사람은 통나무처럼, 코를 만진 사람은 소방 호스처럼, 상아를 만진 사람은 단단한 뿔처럼 코끼리가 생겼다고 각자 자신이 옳음을 주장한다.

모두 일면의 진실을 내포하나 전체적 실상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진실 자체가 왜곡될 수 있는 주장들이다.

자연과학의 연구는 처음에 설정한 가설이 정당한 이론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실험을 통해 증명(재현)되어져야 하는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쳐야한다. 어떤 이론을 가정을 하는 단계에서는 창조적 의문과 상상력, 그리고 추리력이 작용한다. 그러나 왜곡된 선입견을 당위로 전제한 추리는 사실 자체를 왜곡시켜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만다.

언론의 논리는 어떤 사실에 대해 여론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 진실 여부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취재원 비밀 보호라는 불투명한 과정이 있어 제보자 또는 취재 기자의 어떤 선입견, 예를 들면 유죄 또는 무죄와 같은 미리 내려진 결론에 의해 논리를 전개해 나갈 수 있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 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처럼 어느 사건이나 사실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언론의 논리는 과학의 논리와 달리 장님의 코끼리 추론과 같은 맹목성이 깔려 있다. 어떤 사실이 알고 싶고 그것도 타 언론과 경쟁하여 신속하게 보도하고 싶은 만큼 과학적으로 추적해 들어가는 정확성과 치밀성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사안에 따라 취재 대상에게 치명상을 입힐 위험이 상존한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요즈음, 과학의 윤리를 논하는 것은 필요하다. 과학의 연구가 결국 인간 생명이나 삶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학 이외에 사회적 또는 종교적 성찰이 가세할 근거가 있다 하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 선을 지켜야 한다. 그 선은 과학의 진실성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의 영역에는 어떤 권력이나 권위도 개입될 수 없다. 진실은 결국 드러나고야 마는 필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시대가 은폐, 차단 또는 억압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어둠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것처럼 시간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국 정치의 어두운 시절 언론은 독재 정권이 통제하는 대로 조작된 보도를 하여 국민의 이목을 어둡게 만들고 진실을 왜곡시켰었다.

권위적 시대가 지나갔는데도 생명 윤리라는 선한 명분 뒤에 숨어 세계적 연구의 진실성을 의심하여 연구자들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엄청난 진실 왜곡을 자행한 언론 관행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회 여론 향도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언론인의 말초적 선정적 보도가 자정 장치나 견제 장치가  매우 취약함을 의미한다. 피디수첩 사건은 언론이 최후의 권부라 비난받고 개혁되고 정화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음이 분명해진 상징적 사건이라 하겠다.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연구, 예컨대 세균 무기와 같은 대량 살상의 위험이 있는 반인륜적인 연구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막아야 한다. 그러나 세균에 대한 연구는 질병 치료를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므로 세균의 위험성만을 고려하여 세균 연구를 막는 것은 단선적 시각이다.

마찬가지로 배아 줄기세포 연구도 난치병 치료에 필연적 연구임은 과학계가 동의하고 있다. 영국이 대대적 예산 지원으로 줄기 세포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배아 복제 기술이 장차 인간 복제로 될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줄기세포 연구가 미뤄져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구와 그 연구를 이용하는 문제는 별개의 차원인 것이다. 

 취재 의도가 진실 규명을 넘어 연구팀에 치명상을 입히려는 불선한 의도에 의해 세계적 연구를 마치 사기극처럼 다룬 MBC 피디수첩은 공영 방송의 심대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중대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생명 윤리의 확립이 중요한 것 못지않게 언론의 윤리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함을 느낀다. 정신분석에서는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동기와 의도가 있다고 본다. 과학 연구이건 언론의 취재이건 사람이 하는 행위인 만큼 동기가 문제가 된다. 연구 동기나 취재 동기가 불순하다면 이는 준엄한 비판과 법적 책임까지 물어야 할 것이다.

 인류의 고통을 해결하고자하는 순수한 의도의 연구에 대해 지엽적인 문제점을 보완하라는 주문에서 멈추고 학문의 영역을 비과학의 논리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 과학의 연구에 대한 비판은 과학자가 또 다른 연구에 의해 학문적으로 반박해야지 언론이나 종교계가 반박하여 세계적 연구의 발목을 잡는 소모적 논란을 거듭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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