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조강 그리고 염하강을 끼고 있는 김포는 작은 산과 개울 및 들판으로 어우러져 마치 우리나라 산천의 축소판 같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김포시 월곶에서 강화대교 가는 방향으로 국도 변 왼쪽에 있는 포내리 동네 주변이 그런 곳이다.

10년 전부터 이곳을 지나면서 하천을 따라 거닐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늘 뒤로 미루고 자동차로 지나치기만 하던 곳을 추수가 끝난 11월초에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평소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시간차이 일뿐, 언젠가는 몸이 마음을 따라 간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게 한 곳이다.

며칠 산을 오르고 땅속을 탐사하는 것도 아닌데 잠깐 동안 시간 내기가 이렇게 어려웠나, 아마도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들로 눈과 귀와 마음에 가득 있었으니 여유로움을 가질 수가 없었다. 11월 들어 한번은 혼자서 두 번은 가족과 함께 허락 없는 방문을 했다.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면서 개울가를 따라 이곳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진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작지 않은 개울과 산(山)이 품은 작은 들판의 풍경이 고향에 온 듯한 포근한 느낌이랄까? 군(軍)에서 제대해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마음이랄까! 아무튼 설레는 마음을 품고 두 시간 넘게 사색에 잠겨 걷게 되었다.

개울가에 모여 있는 갈대와 언덕의 억새들, 산을 돌아가는 작은 물길들이 모처럼 살아 숨 쉬는 나를 보게 되었다. 사람 없는 조용함과 한가함을 업고 사색의 길로서는 좋은 곳이다. 이 땅도 한때는 염하강물이 밀물되어 들어 왔을 것이고, 통진(通津)이라는 나루터 “津”에서 읽어 볼 수 있듯이 둑을 쌓기 전에는 습지와 꽤 넓은 물의 땅 이었음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움직임이 없는 자연은 시선을 끌지 못하고 움직이는 것이 있어야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다행이도 아이들은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흐르는 물과 길을 비켜서는 메뚜기, 나무에 서 있는 왜가리들이 아이들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 시간 넘게 걸으면서 논으로 솟아 있는 산자락 바위 틈새를 따라 몇 곳을 탐색하였을 때 시선을 고정시키는 풀잎을 보게 되었다. 짐작하는 바가 있어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고란초”였다. 처음 이곳에 들어서면서 고란초를 만나게 되는 인연이 되려고 마음을 끌었는지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지금은 산(山)을 형성한 바위가 논을 바라보고 있지만 옛날에는 물길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던 곳이었지만, 부여 고란사 약수터에 자라는 전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고란초를 포내리에서 만나게 된 것은 예상 밖의 일이다.

고란초는 전국에 분포되어 자라지만 부여에 있는 고란사를 통하여 널리 알려지게 된 식물이다. 향방약성대전(鄕方藥性大典)에 "원효스님"이 사비강 하류에서 물을 마셨는데 이 강의 상류에 진난(眞蘭)과 고란(皐蘭)이 있다는 것을 물맛을 보고 알았다는 기록이 전하고, 전설에 의하면 임금님이 고란사 바위틈에 나오는 약수를 애용했는데 약수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약수터 주변에 자라는 기이한 풀을 고란초라 부르고, 이파리를 물에 띄워옴으로서 그 명칭이 유래 되었다고 한다.

양지도 음지도 아닌 곳에서 포자로 번식하는 고란초는 향기도 없고, 화려한 꽃을 피우지도 않는다. 바위를 터전 삼아 사시사철 푸른 잎으로 살아가고, 사람들처럼 많은 물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름진 땅을 소원하지도 않고, 남의 자리를 엿 보지도 않으면서 홀씨로 남아 수십년을 살아가는 생명체다.

고란초는 벼랑 끝과 바위틈에 홀씨로 남아, 청산의 뜻을 심으며 살아가고 있다. 김포(金浦 )의 고란초는 이곳 포내리 바위에서 무엇을 보면서 살았을까?

정현채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