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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모두 자연인이다”
   
▲ 유인봉 대표이사

언젠가부터 부담 없이 즐겨서 보는 프로그램은“자연인”이다. 한편으로 보면 은둔자 같아 보이지만 어쩌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의 출발선 같아 보인다.

아무것으로도 치장하지 않은 본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의외로 자연인으로 살고 싶다는 이들이 많다. “자연인”이라는 화두를 통해 보면 어떤 이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이도 있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지 그렇게 자연인으로 살고 싶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삶이 녹녹하거나 만만하지 않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람이“완장”을 차고 있지 않을 때 자연인이 된다. 이름자 앞에 붙는 수식어가 있을 때 사람들의 눈빛이 얼마나 달라지고 변하는지를 수없이 본 바이다.

사람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드는 그 때 자신의 기운을 잘 다스리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자연인의 눈빛은 다르다. 인간 본연의 눈빛과 닮았다.

비로소 인간이 된 눈빛 앞에서게 되면  인간이 보인다. “완장이 없어지고 난 다음”  그래 너도 이제 인간으로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사람이 사람답고 기운찬 것은 완장을 차고 있지 않을 때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잠시라도 완장을 찬 사람들은 좋은 장점도 있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기운에 연류된다. 그때 칼을 휘두르는 것을 많이 보았다. 칼은 상대방도 다치고 썰어 버릴 수 있지만 부주위하면 자신도 용납하지 않고 피를 본다.

그러니 마구 입으로도 칼을 쏟고 두 손과 두발을 칼날처럼 움직이는 것은 자랑할 것이 못된다. 언젠가 상대방을 겨눈 칼날은 곧 나에게도 닥쳐오게 되어있다. 행여 베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세월이 지나면 모래밭에 새긴 발자욱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바다 물결이 한번 다녀가면 금방 지워지는 것과 같을 지도 모르는 허무한 일에 자신을 다 던져 버릴 듯이 사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금방 알 터 이 건만 그것에 목숨을 건다.

언젠가 우리는 앞의 수식어를 모두 떼어내고 자연인이 된다. 그렇게 자연인이 되기 전에도 자연인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살아가야 할 길이 열리고 무리가 없으리라.
날마다 이름자 세 마디 보다 더 큰 별에 목이 마르지 않고 살았으면 한다.

왼쪽으로 치우치든 오른 쪽으로 치우치든 한 쪽으로만 치우치는 일은 반드시 반대급부의 서리발을 맞이한다.
요즘 가을 밭을 하나하나 정리하다보면 큰 길이로 자라지 않은 곡식은 서둘러 열매를 맺는 일에 충실하다. 키가 벌쭉하니 크다고 능사만도 아니다.

오직 들깨는 들깨로 충실하고 고추는 고추로 열려 붉기를 기다린다.
여름에 실하게 열리지 않던 가지는 오히려 초가을을 지나며 더 많은 가지를 주렁주렁 달고 산다.
열릴 만큼 열리고 거둘 만큼 거두는 것은 자연인 들판의 원리이다.

심었으면 열리고 거둘 일이 이어진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자연인으로 자연의 이치가 순환하는 것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수긍할 날이 온다. 자연스럽게  배울 일이다.

넘침도 없고 원망도 없는 세월과 진실은 그렇게 우리에게 올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는 진실, 그것은 먼저 이 땅을 빌어서 살다 간 많은 이들의 간절한 바램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루 한 날을 살다 갈지라도 아무것도 덧칠 하지 않고 계급장을 달지 않은 모습 그대로 자연인으로 살다가기를 소원한다.
무엇이 있는 줄 알면 아무것도 없는 이다.

슬퍼하거나 두려워하는 대신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없다고 고백하면 하늘은 자연스럽게 살다가는 것이 인생이자 진리라고 어깨를 도닥여줄 것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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