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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어려움 속에서도 쾌활할 수 있을까
   
▲ 유인봉 대표이사

어릴 때는 날마다 즐겁게 크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달리기도 하지만 스톱이 되는 순간도 있고 다시 또 걷는 순간도 있다.
하루를 지나면누군가 이웃이거나 알던 사람이 저녁에 죽은 이도 있고 아침에 세상을 달리한 사람도 있다.

사람이 세상을 달리한 소식을 접하면 한동안 그들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들과의 작거나 큰 인연의 스토리가 추억되기도 한다.

내 살점이 아프듯, 그렇게 한동안 가슴앓이가 되는 일들도 있다.
개인적 삶이든 사회적인 삶이든 삶은 제한되어 있다.

누구나 마치 자신은 안 죽을 듯이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무엇을 우선해야할까를 묻고 또 순위를 알게 된다.

오래전에 만났다가 소식이 끊겼던 까마득한 세월이 20년이 넘어 다시 연결되는 인연도 있다.
삶은 그렇게 다시 구비 구비 돌아 처음처럼 다시 만나지기도 한다.
큰 병고를 겪는 중에 먼저 겪은 사람으로서 어떠했는가를 묻는 이도 있다.

진한 아픔을 소환해서 말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고통의 터널을 어떻게 지나왔고 현재도 어찌 지나가고 있는지를.
그것이 지금 초조해하는 이에게는 가장 가까이 귀에 닿는 소리이다.
아이러니하게 행복하다고, 감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일은 고통을 겪은 후의 일이다.

어디인가 떠났다 돌아오면 마치 그래도 집이 제일 좋다고 이야기가 나오는 것과 같은 걸까!
인간사 누구나 먼저와 나중은 있지만 고통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것임에는 같을지도 모른다.
고귀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에 있으랴! 죽어도 좋은 생명이란 없다.

삶이란 어찌나 예측이 불가능한 것인지.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쾌활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밤 한 톨을 주워보면 작은 웃음이 일어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꽃들과 마주쳤을 때도 작은 설레임이 찾아온다.

비극도 희극도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누구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만들어진 상처와 비극의 자국들이 무수히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여도 인생을 근심에 쌓여 보낼 수는 없다. 사라지는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눈길을 주고 위로를 주고 받다보면, 삶에서 무엇이 보다 중요했던 것인지를 알게 된다.

때로는 내가 먼저 인생을 경유하며 아픈 매를 맞은 일이 면역을 위함이었으며 후일에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약이기도 하다.
 그토록 간절하게 이루고자 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와 경험도 누군가에게는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될 수 있다.

인생의 슬픔도, 기쁨도, 아픔도 거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밥이 되고 영혼을 닦는 하얀 수건이 될 수도 있다. 슬픔이 많은 세상을 살면서 순간, 순간 떠오르는 이들에게 큰 이유 없어도 따뜻한 밥 한 그룻 대접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을 일이다.

한사람을 대할 때 모두 하늘처럼 대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삶의 순간순간은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이다. 자신은 스스로를 무너질 듯 작다고 여기지만 누군가가 오늘도 그를 떠올리며 기운을 얻을‘희망의 아이콘’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는 자신과 타인이 아는 자신이 존재한다. 희망으로 부르면 그냥 희망이 되게 하라.
비극은 존재한다. 내일도 모레도 어떤 비극은 나타날 지도 모른다.

오늘을 감사해야 할 이유이다.
심각한 현실이지만 그 심각한 현실을 살아내려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게 맞다. 때로는 눈은 울고 있어도 입은 웃어야 한다.
슬픔도 비극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여름이 지나갔음을 확실하게 느끼듯 공기가 차츰 서늘해지면서 찬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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