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한해 동안 해외로 유학을 떠난 유학생이 2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 가운데 절반은 초등학생이고 나머지 반은 중고생으로 초등학생이 유학을 간다는 것은 부모가 함께 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이이기 때문이다.

중고생 또한 아직 자아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 사춘기 과정이라면 혼자 유학 보낸다는 것은 위험한 일로 외국이라는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힘도 부족하거니와 정서적 어려움에 시달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 유학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엄마들이 함께 간 가정은 더 이상 가정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한 공간이 되고 만다. 가정이란 가족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홀로 남은 아빠들을 무리에서 이탈해 홀로 된 처량한 기러기 신세가 되었다 해서 기러기 아빠라 부르고 있다.

얼마 전 한 성실한 기러기 아빠가 홀로 외로움을 달래려 과도한 술과 담배에 의존하다 지병인 고혈압이 악화되어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전해졌다. 혼자이다 보니 사망 사실을 안 것도 5일이나 경과된 후이고 그것도 가족이 아닌 회사 동료가 발견했다 한다.

아마도 그 아빠는 IMF 위기 이후 계속되는 불경기의 희생자일 수 있으며 건축 경기의 부진으로 인해 건축사라는 전문직마저 어려움 속에 빠뜨리고 결국은 정신적 공황 상태까지 이르게 만든 것이 아닌가싶어 씁쓸한 마음 급할 수 없다.

처자식을 떠나보낸 공백을 술로 달랜 것 같은데 알코올 의존은 사랑의 결핍을 보상받고 싶은 표현이면서 한편으로는 치명적 자살 행위이기도 하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까지 유학을 보내려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한국의 공교육 부실과 교육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 진단한다. 맞는 이야기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출세의 방편으로 남보다 일찍 유학길을 서두르는 것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일 것이며 부모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자녀의 학업과 출세에 매달리는 것은 그것으로 자신도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녀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행복은 밖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얻어 내야 하지 않을까. 가정이 화목하지 않은데 나 홀로 행복해질 수는 없다.

가정 이전에 자신의 마음에 평화가 없는데 행복할 수 있을까. 과연 오직 공부와 성적에 관심을 두고 일등만을 고집하는 엄마가 외국으로 가면 행복할 수 있을까. 상당수 엄마들은 한국의 다른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외국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선진국의 교육 환경이 좋다는 것은 자율성, 창의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핵심이며 특기를 살리고 전 과목 평균 성적 순위로 학생을 평가하지 않는다. 여기에 우수한 교사들과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들이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분위기 이것들이 합쳐져서 좋은 교육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무조건 외국을 흠모하고 숭상한다면 주체성이 모호해지게 되고 사춘기 이전에 해외로 나가는 아이들은 한국인으로 자라나기는 어렵다. 주체성의 정립은 사춘기 청소년이 획득해야 될 가장 중요한 정신 과제다.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된 후 필요에 의해 학문을 하게 되고 민족의 정체성이 형성된 후 유학을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해야 비로소 한국인으로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학과 관련된 분야가 아니라면 굳이 사춘기 이전부터 조기 유학을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며 자신의 진로가 결정된 후 뜻을 세워 유학을 간다면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다.

물론 부모가 해외 근무나 연수 기간에 함께 갔다 아버지는 귀국하고 아이들은 계속 남아 공부하는 경우도 흔하지만 이 때도 엄마가 전적으로 아이들에게 매달리고 아빠는 돈버는 기계로 전락한다면 유학을 중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된다. 아이들이 최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다.

최훈동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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