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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를 다시 묻다
   
▲ 유인봉 대표이사

녹음이 짙어지는 6월의 숲은 말할 수 없이 깊어만 보인다.
잎 새가 나서 자라기 전에는 휑하던 숲들이 이제 전혀 다른 모습의 세계이다.

행여 무심히 마음을 내려 놓고 앉아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꼼짝없이 바라보아도 명경이 따로 없다.
손가락 하나의 미세한 움직임도 없이 몸도 마음도 그대로 앉아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보는 일은 그대로 명상이다. 그렇게 자연과 사람을 바라보면 좋겠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다시 보이고 새로워 지는 순간들을 만난다.  

자신의 인생도 타인의 인생도 때로는 스스로‘적당한 거리 두고 보기’를 통해 새로워지고 복이 될 수 있다.
가까이에서는 안 보이던  희망과 좋은 점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면 다시 제대로 평가되기에 충분하고 회복하기도 한다.

한곳을 오래보고 앉아있는 것은 머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에게 꼭 필요한 몸의 능력이다. 머리가 가자고 해도 때로는 몸이 붙잡아 앉혀 놓아야 한다. 우리는 머리로만 살지 않고 몸의 능력으로 은근과 끈기를 발휘하며 살아간다.

머리로 판단했어도 너무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은 것이 도리어 복이 되는 경우도 인생에서 경험한다.‘싫다’와‘좋다’에 매여 너무 빨리 자르고 돌아서기 보다‘깊은 뜻이 있겠거니’하고 바라보다가 잘 했다는 결과를 만나기도 하는 것이 삶이다.  

그 사이에 흘러갈 것은 흘러가고 다시 들어올 것은 들어와 자리를 편다. 고요해지고 평정된 마음에 평화가 살포시 내려앉는 법이다.
숲은 적당히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적당한 드러남을 통해 사람들에게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의 호흡을 가르쳐 주는 듯하다. 너무 오픈하지도 말고 너무 가리기만도 하지 말라고 일러주는 것만 같다.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도 않고 다 내 놓지도 않는데서 신선도가 유지되는 걸까!
적당한 거리와 감추어짐은 더 가까이 가고 싶고 알고 싶은 창조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람도 그렇다. 적당한 거리에서 보면 더 좋다.

사실 세상도 사람도, 너무 잘 아는 것 같은 생각은 단지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는 일이다.
부부의 가까움도 때로는 적당한 거리두기로, 자식사랑도 때론 적당한 거리에서 비추어 주면 더 적절할 수 있다. 가까울수록 더 그 사이에는 적정선이 존재해야 오래간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지며 깊이 가슴에 담기에 충분하다.
빨리 달려가서 잡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기다리면 또 다른 만남으로 돌아오는 것들도 있다.
‘ 만나게 될 것은 돌아돌아 와서 결국 만나게 되는구나’ 하는 것들의 경험.

많이 넘치지 않고 집중해서 깊은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단순한 말들이 좋다. 오직 한마디가 엄청난 힘과 울림을 준다.
숲을 걷노라면 자연은 엉키지 않고 적당하게 서로의 거리가 있다. 때로는 가리고 때로는 보이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위치한 나무들은 서로 약간씩 비껴서 있는데 모두가 어색함이 없다.

거리를 두고 보는 조화와 존재감과 평화는 모두를 살게 한다.
‘너’와‘나’로 존재하면서 서로‘다름도 같음’도 능히 포용하게 한다.

다름의 아픔도 응시하면서 때로는 경외심과 연민, 남의 고통이 내 고통이 되고 나의 살점이 되는 감수성을 회복하게 한다.
깊이 있는 사유는 달리면서는 할 수가 없다, 때로는 산자락을 가슴에 품고 바라보면서 많은 시간과 달이 뜨고 지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것이 결정적 순간, 창조의 에너지이고 평화로 향하게 한다. 요란한 것만이 세상과 인생을 바꾸게 하지 않는다. 운명을 바꾸는 것은 오래 앉아 한 곳을 응시하는 사소한 눈빛의 힘으로부터 온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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