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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묻은 금수저
   
▲ 한익수 소장

“저는 금수저일까요? 흙수저일까요?”백강포럼 조찬강연회에 참석했다. 원근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멀리 정선에서 새벽 3시에 출발했다는 사람도 있고, 대전에서 올라온 사람도 있다. 7시가 되기도 전에 강의장이 꽉찼다.

배움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시간과 거리가 문제되지 않는다. 강사는 과거 KBS 메인 뉴스 앵커로 명성을 떨쳤던 신은경 아나운서였다. 이날 강연 제목은‘내 나이가 나를 안아 주었다’이다. 올해 환갑을 맞았다는데 아직 40대로 보이고, 미모도 여전하다.

“공영방송 메인 뉴스앵커로 12년, 영국으로 유학 가 박사학위를 받고, 공공기관 기관장으로, 현재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라고 자기 소개를 한 다음 던진 질문이다. 청중들이 머뭇거리자 신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정답은‘흙 묻은 금수저입니다.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 봤다.“중학교 2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대학 입학시험은 1차에 떨어지고 후기 대학에 들어가 열등감에 싸여 대학생활을 했고, 교사시험, 기업입사시험 모두 떨어졌습니다.

방송국도 세 번째 가서야 비로소 합격했고, 정치하는 남편 뒷바라지로 갖은 고난과 시련을 다 겪어야 했습니다.”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연의 성공여부는 처음 시작멘트 90초에 달려 있다고 하는데, 이날 신교수의 자기 소개멘트는 신선했다.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명사의 강연을 듣고, 여행을 하고, 책을 읽는 것은 견문을 넓히기 위함이지만, 더욱 소중한 것은 새로운 만남을 통해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날 강연을 들으면서 나도 다음 강연 때 이런 멘트를 한번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저는 금 수저일까요? 흙수저일까요?”라고 했을 때 청중들의 대답이 궁금하다. 아마도 질문이 떨어지자 마자“흙수저요”라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신교수는 누가 봐도 이미지가 금수저로 보이지만, 나는 흙수저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6.25직전 어려운 시기에 농촌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때 아버님이 돌아 가셨다. 어머님 혼자 7남매를 키우셔야 했다.

초등학교 2학년때는 교과서를 구입하지 못해 주말에 짝의 책을 빌려다 베껴서 공부를 했다. 운동회 날, 검은 운동화 하나 살 돈이 없어서 맨발로 뛰기도 했다. 중학교에 못 가고 14살에 직물공장에 들어가 공원으로 2년간 일했다. 이렇게 시작해서 대기업 중역, 중견기업 사장까지 했으니 나는 따지고 보면 ‘진흙 묻은 금수저다’

요사이 수저 계급론이 유행이다. 좋은 가정환경에서 운 좋게 태어난 사람들을 금수저라고 하고,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해 부모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흙수저로 부른다.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부에 따라 인간의 계급이 결정되는 사회의 불공평한 면을 꼬집는 신조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는 금 수저다.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든 누구나 금 쪽 같은 자식이다.

아기가 태어날 때 자기 자식을 흙 수저로 여기는 부모는 한 사람도 없다. 단지 주변여건 때문에 흙이 좀 묻어 있을 뿐이다. 오히려 흙 수저로 태어나 흙을 닦아내는 과정에서 삶의 진가를 발견하게 된다. 흙을 조금씩 닦을 적마다 금빛이 보인다.

이렇게 공들인 금수저가 더욱 값진 빛을 발한다. 평생을 잘 닦으며 살게 되니 녹도 잘 슬지 않는다. 행복은 소득에 비례하지 않는다. 진정한 행복은 지위나 은행잔고의 상태에 있지 않고 마음 상태에 있다.

감사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잘 헤쳐 나가는 삶의 태도가 행복의 자산이다. 우리는 금수저, 흙수저를 비교하며 살 필요가 없다. 남과 비교하며 사는 삶은 상대적으로 항상 초라해지기 마련이다.

인생에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는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감을 잘 느끼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흙수저로 태어났어도 살아가면서 흙만 잘 닦으면 누구나 더욱 빛나는 금수저가 될 수 있다.

한익수 소장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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