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연재 혁신의 비밀
알곡과 가라지
   
▲ 한익수 소장

가라지는 성경에 나오는 식물로서 흔히 말하는 돌피나 잡초와 같은 것이다. 원래 가라지는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지중해 연안 등이 원산지로, 보리나 밀 밭에 흔히 섞여 나는 잡초다.

가라지가 목초에 섞이면 가축이 먹고 중독을 일으키고, 밥에 한 알만 들어가도 쓰고 독성이 있어 독보리라고도 부른다. 가라지는 이삭이 패어 익기 이전까지는 생김새가 밀보리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흡사해서 골라내기가 어렵다.

어릴 적 시골에서 농사일을 도운 일이 있다. 농사일 가운데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곡식이 자라는 동안 수시로 돌피나 잡초를 뽑아주는 일이다. 논에는 돌피가 벼와 함께 자라고 있고, 밭에는 각종 잡초가 자란다.

돌피는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힘이 강해서 돌피가 있으면 벼가 실하게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수시로 뽑아주어야 하는데, 벼와 너무 흡사해서 노련한 농부라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때는 논에서 돌피를 한 다발 뽑아 가지고 나와 보면 멀쩡한 벼가 섞여 있는 경우가 있다.

밭농사를 지어보면 아무도 잡초를 뿌린 사람이 없는데 곳곳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곡식은 거름을 주며 가꾸어도 제대로 안 자라지만, 잡초는 수시로 뽑아내고 제초제를 뿌리며 제거하려고 애를 써도 자꾸자꾸 돋아난다. 이것이 바로 잡초의 근성이다.  

1997년 우크라이나에 파견되어 현지 자동차회사 공장장으로 일할 때의 일이다. 처음 그곳에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환경이 열악했다. 건물 곳곳에 물이 새고, 오랫동안 멈춰있던 공장 내에는 개들만 돌아다닌다. 당시 한국에서 파견된 인원은 50여 명이 되었다.

적당한 숙소를 마련하기가 어려워 오래된 4층짜리 아파트 건물을 임대하여 임시 숙소로 활용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직원들이 곤하게 잠든 한밤중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아파트 1층부터 화염이 위로 번져 자칫하면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했는데, 다행히 모두 무사히 대피했다. 건물은 점점 더 불길에 휩싸여 갔다. 인원파악을 위해 달 빛 아래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탈출해 나온 모습들은 각양각색이다.

가방과 사물까지 다 챙겨가지고 나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만 겨우 빠져나온 사람도 있다. 몇몇 사람은 잠옷 차림으로 그을린 얼굴에 피가 줄줄 흐르는 체로 화염 속을 빠져나왔다.

화재가 나자 본인의 짐은 챙길 생각조차 못 하고 연기 속을 헤치고 아래위층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잠자는 동료들을 깨워 탈출을 도운 뒤, 뒤늦게 알몸만 겨우 빠져나온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 덕분에 모든 직원들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사람은 위기 상황이 닥칠 때 본성이 드러난다. 평소에는 헌신적으로 보이던 사람도 갑자기 배가 전복되거나 화재가 발생했을 때 자기 몸만 빠져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변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알곡과 같은 사람과 쭉정이, 가라지와 같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평소에는 좀처럼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가라지가 오히려 더 알곡처럼 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알곡과 가라지는 이삭이 나올 때 구분이 되고, 사람은 위험에 처할 때 옥석이 가려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리더나 지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조직이나 국가의 운명이 좌우된다.

민주주의 꽃은 선거다. 투표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국민이 알곡과 쭉정이, 가라지를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가질 때만이 훌륭한 지도자를 뽑을 수 있다.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잘 관찰하지 않으면 참 일꾼과 가짜 일꾼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판단력과 귀중한 한 표가 국가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한다. 지도자의 수준은 결국우리 국민의 수준이다.

한익수 소장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익수 소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