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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거리의 겨울
   
▲ 한익수 소장

2019년 캘거리의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 밤에는 체감온도가 영하 30-40도에 가깝고 한낮에도 영하 20도를 웃돈다. 10월에 첫눈이 내리면 녹을 겨를도 없이 쌓였다가 4월이나 되어서야 녹기 시작한다.

캘거리에 온 지 어느덧 3주가 지났다. 이른 아침부터 서걱서걱 눈 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눈 치우는 소리가 들리면 밤새 눈이 또 내렸다는 신호다. 이곳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눈 치는 일이 일과 중의 하나다.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긴 겨울, 눈을 그때그때 치우지 않으면 계속 쌓인다. 눈이 내리면 큰 길가나 산책로는 캐거리 시에서 치우고, 집 앞의 눈은 각자의 몫이다. 이렇게 춥고 긴 겨울을 캘거리 사람들은 어떻게 지날까?

아내와 함께 지난여름 자주 걷던 길로 산책을 나섰다.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자작나무 숲, 짓 푸른 침엽수 위에 덕지덕지 붙은 하얀 눈 꽃송이가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되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산책 나온 사람들, 개와 함께 걷는 사람들, 하얀 눈 탄자 위를 뽀드득 뽀드득 합창소리를 내며 걷는다. 영하 20도라고는 하지만 한낮에는 따뜻한 햇볕에 바람이 없고 습기도 많지 않아 예상보다 춥지 않고 상큼하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동네 언덕은 온통 아이들의 눈썰매장이다. 다운타운 주변을 흐르는 보우 강은 겨울이 되면 거대한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 강을 따라 뛰는 사람들, 자전거 하이킹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활기차다. 영하 20도, 한낮의 날씨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시원한 날씨다. 시내 쇼핑몰에 가 보면 반소매 티셔츠 차림의 어린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위의 안내로 밴프의 설경을 보러 나섰다. 캘거리에서 밴프까지는 승용차로 1시간 반쯤 걸린다. 눈 덮인 길을 따라 밴프국립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병풍처럼 양쪽으로 펼쳐지는 로키산맥 줄기가 장관을 이룬다.

밀림 수준의 울창한 숲과 산등성이에만 보이던 만년설 대신, 온 산이 순백의 흰옷으로 갈아입었다. 밴프타운에 들어서자 눈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은 백설 공주라도 나타날 듯 조용한 설국이다.

곤돌라를 타고 2,280m 높이의 설퍼산 전망대에 올랐다. 눈 덮인 로키산맥이 사방으로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의 따뜻한 커피 한 잔은 천상의 맛이다. 산 정상의 만년설과 흰 눈 폭탄을 맞은 침엽수 계곡 사이로 안개구름이 허리를 둘렀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황홀경에 빠져 마법에 걸린 듯 한참을 쳐다보다가 다시 곤돌라에 몸을 실었다. 내려오는 길에 밴프타운 가까이에 있는 어퍼 핫 스프링스 야외 온천장에서 잠시 몸을 녹인 다음, 캐나다의 보석 레이크 루이스로 이동했다.

에메랄드빛 영롱한 빛을 뽐내던 광활한 호수가 은빛으로 얼어붙었다. 얼음 위에서는 스케이팅을 즐기는 사람들, 호수 위를 걷는 사람들, 마차를 타고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사람들, 아이스 매직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마치 숲속 겨울 왕국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창문 밖으로 빅토리아 빙하에 둘러싸인 레이크 루이스를 내다보며, 페어몬트 샤토 레스토랑에서 애프터 눈티셋트로 출출한 배를 채우고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와야 했다.  

캘거리는 동계올림픽 개최지답게 겨울 스포츠의 천국이다. 겨울이 오면 주변의 강, 호수는 모두 스케이트장으로 변하고, 밴프의 로키산맥 줄기는 보송보송한 파우더 눈으로 덮인 자연 스키장, 스노보드장으로 변한다.

밴프의 캐나다 로키는 언제 봐도 아름답다. 사계절의 아름다움은 옷만 갈아입었을 뿐,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낼 때마다 거대한 자연의 또 다른 신비를 선보인다. 캘거리 사람들은 미세먼지, 벌레조차 보이지 않는 눈 덮인 은빛 세상에서 상큼한 겨울 공기를 마시며 긴 겨울을 난다. 나무들도 새들도 온갖 짐승들도 하얀 겨울을 나는 방법을 터득하고, 새봄을 기다리며 잘도 지내고 있다. 

한익수 소장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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