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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잎 세 개와 가시에 걸린 우주정현채의 문화읽기(17)

산수유부터 자귀나무, 소나무, 보리수와 매실, 대나무, 내 나이 보다 많은 무궁화를 비롯해서 17종의 나무와 함께 김포시 월곶면 고막리 문수산 밑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꽃과 열매를 피우고 맺는 것을 보면서 내가 나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나와 우리가족을 도와준다는 생각을 갖는 계기가 되었던 곳이다.

꽃이 필 때는 벌들이 왕래하고 열매가 열었을 때는 새들이 찾아오는 모습에서 나무는 걸어 다니는 사람들 보다 외롭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겨울밤에 쉬지 않고 내린 눈으로 소나무 가지가 땅으로 휘어지는 것을 보고는 밤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감정의 나눔도 있었지만 나무들은 가지 하나를 잃어도 스스로 전부를 버리지 않는 생명체의 굳건함을 엿보기도 했다.

김포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대부분의 나무들이 자라는 좋은 기후 조건을 가졌다. 하지만 대나무와 탱자나무는 김포에서부터 그 굵기와 크기가 남쪽보다는 훨씬 작게 자란다. 그도 그럴 것이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에 있는 400년 된 탱자나무(천연기념물 79호)는 탱자나무가 성장할 수 있는 북방 한계선이니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통진고등학교 교정에도 30년이 넘은 탱자나무가 봄에는 하얀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푸른 잎을, 가을에는 노란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가시에 핀 앙증맞은 하얀 꽃과 노란열매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핸드폰에 보이는 관심만큼도 탱자나무에 기울이지 않기에 3년 동안 그 앞을 지나고 있어도 탱자나무를 알지 못한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무관심이 나무에게 도움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생명체의 눈을 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개인적 해석이다.

『탱자나무 가시와 마름쇠』
탱자나무는 남쪽지방에서는 집과 과수원의 울타리로 널리 심어졌으며, 나무 가지는 풍물놀이에서 북채로 사용되기도 했다. 탱자나무가 울타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나무 가지가 벌어지지 않고 촘촘하게 자란다는 것과 가시가 있다는 잇점으로 사람들과 동물들의 침입을 저지하기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제목의 책은 마지막 그루터기까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나무와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탱자나무도 가시와 열매를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제공한다. 각 지역에 있는 탱자나무 중 강화도 갑곶리의 탱자나무는 나라 도둑놈들의 침입을 저지하는 역할을 했고, 각 가정에서는 집 도둑을 막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심은 탱자나무 가시는 비스듬하게 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것은 백제시대 철제무기인 마름쇠를 연상하게도 한다. 백제시대 마름쇠를 만들었던 사람이 탱자나무 가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탱자나무가 성벽을 넘어오는 나라 도둑을 가시로 차단하는 역할을 하였듯이 마름쇠는 땅에 뿌려지면 세 개는 땅을 지탱하고 하나의 가시는 하늘로 향해 말과 사람들의 이동을 차단하는 발목지뢰의 역할을 했다.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고 있는 나무들은 사람들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 자체의 존재 이유로 있을 것이다. 하얀 꽃의 인연과 세 개의 가시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는 탱자나무 열매는 여름에는 푸른색으로 잇는 듯 없는 듯 한철을 난다. 그러다가 가을에 노란 열매와 함께 그윽한 향으로 공간을 채운다. 나는 그 때마다 우주의 작은 모습을 본다.

정현채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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