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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방울이 회초리가 되다
   
▲ 유인봉 대표이사

새해맞이를 독특하게 경험했다. 년 말 년 초의 매우 추운 날씨 덕분에 분명히 물을 한 두 방울씩 떨어뜨려놓았음에도 수돗물 길이 얼어버리고 말았던 까닭이다.

물이 저절로 녹아 한 방울이라도 나오는가 하고 간절하게 수도꼭지를 만져보면 영 기별도 없다. 갑자기 약속도 다 취소하고 물과 보일러 수도관등 평소에 저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던 시스템의 점검에 돌입했다.

기본이 마비되면 그 이상은 다 사치가 된다.

물 한 방울이 회초리가 된 년초이다. 얼은 수도관을 녹이려 업체를 불러도 안 되는 통에 몇 날이 걸려서야 다시 물줄기가 터져 나오게 되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온 세상이 다 행복해 보이고 걱정이 없는 거 같았으니 엄청 혼난 거다. 겨울의 동장군을 만나 손이 곱도록 고생하고 있을지 모르는 이름 모를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주변의 작은 회초리들을 통해서 ‘아차’ 하고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 정신을 차리게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물’과 ‘불’의 불통은 그야말로 갖추어져있던 편리하고 품위 있는 시스템을 간단하게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사람살이도 가장 작은 기초단위를 잘 챙기지 않아 품위를 손상당하거나 낭패를 보는 일이 있다. 갈수록 좀 더 자신의 가장 작은 주위를 챙기는 일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일로 자리잡아야 함이 마땅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반경을 잘 챙기고 잘 살아내는 소소하고 세심한 일이 만만치가 않지만 쉽게 생각하고 지나치거나 하면 따끔한 회초리가 따르기도 한다. 예상치 못했던 일과 사람들을 통해 고단하게, 또 때로는 강제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도 있다. 그까짓 것은 없다.

처음에는 물이 나오는 한쪽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싶어 이리 저리 물동이를 옮기며 수공업적으로 살았다. 일일이 챙기고 아껴 쓰고 다시 쓰면서 반성했다.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펑펑 마구 흘려보내는 물도, 습관도 많았다는 것을 돌아보았다.

기억 속에는 마을 공동우물가가 있었다. 동그랗고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면 거울처럼 맑은 물에 얼굴이 비추이던 기억과 고드름이 주렁주렁한 우물가에 두레박으로 드리워서 한 바가지씩 길어 올리고 물통에 담아 집으로 날랐던 모습이 떠오른다. 감히 물을 어찌 박대할 수 있었나!

우물가에서 물지게로 길어온 물을 가마솥 가득 담아놓고 뿌듯해 하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김이 오르는 따뜻한 물을 가지고 어머니는 밥도 짓고 더운물로 형제들이 오랜만에 목욕도 했던 일들, 이모 저모 알뜰하게 살던 일들이 어제일 같고 행복했던 그림이다.

정말 그렇게 살았던 날들도 있었다. 물과 불은 언제나 우리들의 생존에 가장 기초이며 생명의 어떤 순간과 마지막에는 무엇보다도 우선한다.

수도물이 얼어서 고생하는 동안 마음이 따뜻한 이웃들의 연대와 교류도 만났다. 물이 녹아 흐를 때까지 연이틀간이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은 관을 녹이고 함께 고생한 이들의 손길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개인의 난감하고 직접적인 경험을 내일처럼 해결을 함께 해준 이들이 새로운 식구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정성껏 밥을 해서 같이 먹었다. 새해들어 가족이 늘어난 것 같이 고맙고 기쁜 기억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친한 친구도 1년에 한 번 이나 볼까하는 경쟁사회에서 유대감을 느끼게 되는 경험이 너무나 소중하다. 이틀간 “수도녹임의 주체”가 되어 함께 식구가 되는 경험으로 밥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오랫동안 알아온 이웃처럼 좋아졌다.

가족이 해체되고 혼자 사는 이들도 많은 세상이지만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고맙게 의존되어 살아간다.
물도 필요하고 불도 필요하고 소중한 이웃도 필요하다. 새해 벽두부터 어려움을 같이 나누고 도움을 받은 일들은 여간 소중한 기억이 아니다. 언젠가는 누구의 어려움도 내 어려움처럼 돕고 갚을 일이 있을 거다.

살다보면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고 살기에는 벅찬 일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 누군가 돕는 손길이 나타나 해결이 될 때 마음의 온도가 따뜻해진다.

보도에 의하면 중년 1인가구도 2000년 53만9000가구에서 2017년은 184만 9000가구로 늘어났다고 한다. 본인이 주인장이 되어 살아가는 독립가구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형제자매 혹은 누군가와 정서적 공감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살아왔던 세대라면 현재 우리자녀들 세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우리아이들은 정말 난감할 때 누구와 풀어가며 살까?’ 그것이 가끔 걱정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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