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연재 혁신의 비밀
독서는 감자캐기이다.
   
▲ 한익수 소장

어릴적 농사일을 돕던 생각이 난다. 우리는 강화도 고인돌 주변에 1,000여 평에 가까운 커다란 밭 한 떼기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강화역사박물관이 생기면서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되어 출입이 안되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친구들과 고인돌 위에 올라가 놀곤 했다. 당시 밭에는 주로 감자를 심었다.

감자 농사를 지으려면 수시로 잡초를 뽑아주어야 하고, 수확할 때도 일손이 많이 간다. 지금은 편리한 농기구도 많이 생겼고, 감자를 심을 때 비닐을 씌워서 잡초가 덜 나지만 당시는 맨땅에 감자를 심어 잡초가 무성했다.

넓은 밭에 잡초를 뽑으려면 많은 일손이 필요한데, 농번기에는 서로 바빠서 인부 구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을 서로 돌아가면서 동네 사람들끼리 ‘품앗이’로 일을 했다. 뙤약볕에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리고 잡초를 뽑다 보면 허리가 아프고 배도 고프다.

점심때가 다가오면 자꾸 고개가 마을 쪽으로 향하게 된다. 점심을 준비해서 머리에 이고 오솔길을 따라오시는 어머님과 형수님이 멀리 보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점심이 도착하면 고인돌 밑에 자리를 깔고 밥상을 차린다.  고인돌은 하나의 상판과 두 개의 굄돌로 되어 있는데, 상판의 크기가 가로 5m, 세로가 7m나 되어 굄돌 사이 공간이 꾀 넓다.

고인돌 밑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한 여름에도 동굴처럼 시원하다. 고인돌 밑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청하는 낮잠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 들고는 고인돌 주변 감자 밭 생각이 난다. 밭에 일하러 갈 때 밭의 크기가 너무 크면 겁부터 나듯이, 책도 너무 두꺼우면 선뜻 손이 안 간다.

밭이 넓으면 농사일이 힘들긴 해도 수확이 많은 것처럼, 두꺼운 책 속에는 그만큼 건질 것이 많다. 감자 밭에서 잡초를 뽑을 때도 처음에는 잡풀이 많아 힘들지만 두 번째는 한결 수월한 것처럼, 책도 처음 읽을 때는 지루하지만 다시 읽을 때는 접어 놓거나 밑줄 친 부분만 훑어봐도 내용을 알 수 있다.

감자를 캐는 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주렁주렁 달린 감자가 나오면 피로가 가신다. 감자를 캐는데도 요령이 있다. 굳은 땅에서 감자 줄기를 잡아당기면 감자가 함께 달려 나오지 못한다.

주변의 흙을 호미로 어느 정도 부드럽게 한 다음 줄기를 잡아당겨야 통째로 나온다. 책을 읽을 때도 읽기 전에 저자약력, 프롤로그, 목차 등을 살펴서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읽으면 좀 더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다.

두꺼운 책을 힘들게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기분은, 하루 종일 감자 밭에서 일하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밭고랑을 빠져 나오는 기분과 흡사하다. 책 읽는 것도 습관이다. 나는 외출했다가도 시간이 나면 책방에 들려서 한두 권의 책을 사가지고 돌아 오곤 한다. 얼마 전 일산에 있는 현대백화점에 들렸더니 책방이 없어졌다.

홍대입구, 밤거리는 사람들로 분비는 데 책방은 조용한 음악소리만 울려 퍼질 뿐 한산하다. 이러다 또 책방이 없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지하철, 버스 안에서도 책 읽는 사람들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책을 읽는 목적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것이다. 독서는 저자와의 지적 대화이다. 책 속에는 지혜와 아이디어가 숨어 있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책은 우리 안의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다”라고 했다. 좋은 운동이 몸의 근육을 만드는 것처럼, 좋은 독서는 생각의 근육을 만든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좀 더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간다. 아무리 스마트폰을 많이 들여다봐도 책 속에서 얻게 되는 지혜는 얻기 어렵다. 책 속에 숨어 있는 알 감자를 찾아내는 기쁨은 읽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선물이다.     

 

 

 

 

한익수 소장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익수 소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