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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밥”처럼
   
▲ 유인봉 대표이사

사람살이 중에서 먹고 자는 일처럼 중요한 일은 없다. 일주일 혹은 이주일 정도 집을 떠나보면 안다. 그동안 숙식을 해오던 집과 집에서 소찬으로 먹는 밥이야말로 가장 마음과 몸을 안정시켜준 일등공신이라는 것을.

집 밥을 먹고 나면 웬지 편안하고 밥을 먹은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가장 따뜻한 그림 중의 하나를 떠올리면 가을걷이에 바쁜 하루를 보내고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담백한 무국이 생각난다. 일상의소소한 음식의 가치는 그 이상을 넘어 우리들의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이기도 하다.

행여 어떤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더니 마치 집에서 먹는 것 같은 마음이 느껴지면 다시 그 집을 찾는 발길이 된다.
가끔 세대를 넘어 어머니들의 손 맛과 집 밥의 가치와 힘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외식하는 일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시대에는 집집마다의 장맛과 손맛 집밥이 있었다. 그것은 꾸준히 이어온 맛의 역사였고 그 이상 생명을 생명답게 하는 힘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집밥의 그리움을 찾는 ‘방랑식객’들인지도 모른다.

김치 한 조각만 있어도 집에서 먹는 것이 편하고 좋다. 그만큼 우리들의 시대에는 ‘집 밥’이라는 것이 중요해져 버렸다. 먹는다는 것은 단지 입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다. 온 몸과 마음의 평화와 온기를 먹고 치유의 힘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집 밥을 오랜 동안 못 먹으며살다보면 삶 자체가 흔들린다.
마음도 공허하고 정서적으로도안정감이 없이 붕 떠있는 느낌으로 사는 면이 있다.

아무데서나 한 끼 때우기식의 삶이 주는 공허함은 배고픔 이상의 건조함과 피곤함으로 이어진다. 너무 여유 없게 다른 이들에게 대하고 강팍한 마음이 되는 것도 어쩌면 삶을 인스턴트화하고 살면서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염려가 된다.

“밥”은 밖에서 사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사는 이들도 있고 부득이하게 외식으로 살아야할 경우가 많은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그러나 때로는 하얗게 쌀을 씻어서 앉히고 밥 익어가는 냄새가 집안 가득하게 구수한 향으로 감돌 때 그것이 진정 사는 맛일지 모른다.

부득이 혼자 밥을 먹더라도 스스로 하루의 시간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과 자신을 앞,뒤, 옆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회복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삶은 누구나 절박한 사유가 있고 누구에겐가 다 공개하기는 어려운 속마음이 있다.
가장 필요한 치유는 어쩌면 집밥을 먹으면서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먹어왔던 집밥을너무 안 먹고 부엌에 냉기가 돌게 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요리사만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집밥을 지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수공업적인 삶이 가져다주는 든든한 생명력이 있다.

너무 자주는 아닐지라도 애써서 자신이 직접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집밥을 지어보고 따뜻하게 먹어보면 좋겠다. 지금 남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는다는 일이 멀어지고 있지만 누구든지 밥먹고 가라고 붙잡던 우리네 인심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밥을 나눈다는 것은 하늘을 같이 바라본다는 것이고 서로 공감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싫은 사람과 밥을 나눈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가장 필요한 치유의 경험도 되고 공감을 통해 무슨 이유가 있었구나 하면서 풀어지고 녹아지는 기회가 된다.

“절박하게 필요한 치유”는 같이 마주 밥먹고 그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듣는 일이다. 밥을 마주한 대화야말로 진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기에 적당하다. 좋아도 같이 밥먹고 풀어야 될 일이 있어도 같이 밥을 먹자고 하면 좋겠다.

먹으면 풀린다. 집밥의 수고와 정성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요즘처럼 정성이란 말보다 편리함이 앞서는 시대에 수공업적인 집밥의 정성이야말로 상대방의 상한 마음을 풀어주고 속을 알차게 채워주는 생명의 힘이 될 것이 틀림없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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