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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
   
▲ 한익수 소장

“현석아, 오랜만이다.” 기름투성이 푸른 작업복에 남루한 옷차림으로 반가워 손 내미는 나를 보자마자 현석이는 고개를 돌리고 그냥 가 버렸다.

나는 깔끔한 중학교 교복 차림에 책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현석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멍하니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날따라 가을바람에 뒹구는 낙엽처럼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나는 6.25가 나기 몇 해전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강화도 고려산 밑에서 7남매의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농사를 지어가며 7남매를 힘겹게 키워야 했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나는 강화 읍내에 있는 남화직물이라는 직물공장에 취직을 했다.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하루에 12시간씩, 일주일은 낮에 일하고 일주일은 밤에 일을 해야 했다. 내가 맡은 일은 60여 대가 되는 자동방직기에 돌아가면서 기름을 주입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밤샘을 하면서 졸음을 참기가 힘겨웠다.

당시 공장에서 문직기를 돌리는 직원들은 대부분 여공들이었다. 어린 시절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던 나는 누나들 틈에서 항상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내가 착실하게 보였는지 사장님은 가끔 나를 불러서 은행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당시만 해도 현금을 직접 가지고 가서 은행에 저금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읍내에 은행 심부름을 갔다가 은행 앞에서 국민학교 동창인 현석이를 만난 것이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린 마음에 무안을 당해서 분한 생각도 들었지만, 현석이가 쓰고 있는 모자 한가운데서 바짝 반짝 빛나던 중(中) 자 뺏지가 자꾸 머리에 떠올랐다. 한 번만이라도 써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 인근에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야간 고등공민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찾아가 알아보았더니 오후 5시에 수업을 시작해서 밤 10시에 수업이 종료된다고 한다.

사정을 해서 회사 일이 끝나는 8시부터 공부를 하기로 하고 입학을 했다. 교복을 맞추었다. 모자도 샀다. 꿈에 그리던 중학교 모자를 쓰던 날 나는 날듯이 기뻤다. 아침에 교복을 입고 회사에 출근해서 저녁에 다시 교복으로 갈아입고 저녁밥도 못 먹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이렇게 시작한 공부가 나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국민학교 졸업 후 2년간 일해서 번 돈으로 정식 중학교에 편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나는 강사 프로필 맨 앞에 경력 하나를 추가했다. “남화직물공장 공원2년(13-14세)”라고. 지금까지는 창피해서 입 밖에 내기조차 꺼렸던 나의 숨은 경력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도움도 받고 영향도 받았지만 그중에서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가장 소중한 만남은 남화직물과의 만남과 현석이와의 만남이었다.

어린 나이에 남화직물에서 2년간 일한 경험은 나에게 끈기를 심어주었고, 회사의 한 간부가 되었을 때 근로자들이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사장이 되어서도 쉽게 빗자루를 들고 솔선수범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어린 시절 거리에서 만나 나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던 현석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까지 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현석이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평생 은인이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는 부모님을 만나고, 배우자를 만나고,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책 속의 성인들도 만난다. 누구를 만나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만남으로 인한 상처 속에서도 긍정적인 힘을 발견하고, 그 만남을 창조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실 때 항상 문제점과 함께 주신다. 축복은 고통의 열매다. 만남이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 
  
 
 
 

 

한익수 소장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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