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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일이 제일 쉬웠다㈜제이에스와이글로벌(대표이사, 윤진수)
   
▲ (주)제이에스와이글로벌 대표이사 윤진수

성황리에 준공개업식을 치룬 윤진수 대표는 24명의 직원들을 “식구”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멀리 사는 직원의 가족들을 행사에 특별초청하면서 비행기표와 호텔 예약을 사전에 미리 준비할 만큼 넉넉하고 상대방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오너로 직원과 그의 가족들의 마음을 한 가족으로 이어가고 있다.

“회사를 키우는 목표는 미래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겁니다. 저 혼자 잘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식구들이(직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지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겁니다. 

저는 거래를 할 때 사장을 보고 합니다. 저는 오너의 외로운 결정과 신중한 선택과 경영을 통해 또 다른 많은 윤진수를 만드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윤진수 대표는 올해 36세, 400억 매출을 이루며 돈을 버는 일이 가장 세상에서 쉬운 일이더라고 말하는 힘차고 젊은 기업인이다. 돈을 벌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꿈과 비젼을 이미 확보하고 그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대통령보다 사업이 하고 싶었다

“저는 어려서 너무 가난해 대통령보다 사업을 하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떳떳하게 번 돈으로 앞으로 윤진수 이름의 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청소년들을 제대로 육성하고 제2, 제 3의 윤진수가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그가 청소년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게 된 데에는 그 자신의 독특한 성장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조손가정에서 출발한 그의 어린 시절의 가난함과 배고픔, 그리고 어려서 받았던 상처들이 그에게는 소년가장으로서의 부양과 책임, 미래의 성공을 부채질 해 준 경험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후 자신이 성공해서 해야 할 사회적 책임과 봉사에 대한 지평을 바라보게 해 주었다.
“할머니(양 간난, 85세)께서 부모님이 낳아놓고 포기한 저희 두 쌍둥이를 다 키우셨습니다. 

식당을 다니며 벌어 오셔서 삼시세끼를 먹이셨어요. 동생보다 6분 먼저 태어난 제가 형 노릇을 해야 했는데, 유치원 다닐 때 돈이 없어 한 사람의 몫만 내고 다녔거든요.

어느 날 ‘짜파게띠’가 나왔는데 선생님이 한사람 돈만 내고 다니니 한 사람만 먹으라는 거예요. 동생 먼저 먹이려 저는 물만 먹었거든요(웃음)” 윤진수 대표의 일화는 웃으며 말하는데 상대방을 울게 만든다. 

공부밖에 없다고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고 이후 그는 무슨 일이든지 하면 1등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주산으로 전국대회에서 2등을 했는데 자다 깨어보니 할머니가 트로피를 안고 울고 계시더라구요”

백석초등학교를 다니며 늘 반장, 전교회장, 서곶중학교 1회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였던 윤진수 대표는 인천광성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춤을 어찌나 몰입해서 추었는지 각종 전국 대회에서 댄스부분 1등의 경험과 춤을 통한 봉사, SM신화그룹 백댄서로의 경험도 했다.

“나눔이라는 것이 자신이 다 갖추고 나서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춤을 추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거예요. 그렇게 봉사도 많이 했는데 어느 날 할머니께서 춤을 안 추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하사관으로 군에 복무할 때는 전차부대를 몰았습니다. 사단 1등 교관 3천 명 중 2등, 뭘 하든지 승부근성이 있어서 노력에 노력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불공평한 것도 배웠습니다. 기무사 선발직에서 3차까지 합격했지만  시험을 볼 때 없던 사람이 합격하고 저는 최종 불합격이 되면서 사회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높은 벽을 넘고 넘어 제대로

사회진출 후 세상의 벽이 너무 높았다고 기억하는 윤 대표는 신용카드연체 등 한계가 턱에 찬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대인기피증을 경험하기도 하고 6개월 동안 낮에 자고 밤에 이력서를 만들어 입사지원을 시도해 가며 최저임금으로 모 업체의 기계장비보조원으로부터 새 삶을 시작한다.

“이왕 할거면 제대로 하자는 마음으로 30분 일찍 출근, 퇴근은 1시간 늦게 했습니다. 매일 회사마당청소 30분을 하고 나면 동료들이 출근했습니다. 이왕 하는 김에 회사 내부정리까지 하면서 일요일도 혼자 출근해서 재고정리를 했어요. 

볼트 하나라도 숨은 재고를 8억원을 정리해서 현금화 했습니다. 팀장을 하면서 매출 24억 하던 회사가 1년 4개월 만에 60억 매출이 되면서 법인대표를 28세에 맡게 되었습니다”

“아침 5시 반에 수영하고 가장 먼저 회사 문을 열면서 4년 만에 120억 매출을 이루면서 29세에 결혼하고 9천5백만원 전세로 시작했습니다”

“윤진수”, 그 이름이 자본이다

윤 대표가 다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게 된 강력한 동기는 가족의 아픔을 통해서이다.
“아내의 산후 우울증을 치료하면서 중요한 결단으로 2014년 11월 윤진수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성 후평리 젖소 농장옆에서 시작했는데 불일 듯 30억 매출을 이루며 너무 잘 되다가 중국수출사기로 빈손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현관에 락카를 뿌리며 돈을 갚으라고 했던 그 흔적이 다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도 손잡이를 열면 흔적이 틈으로 보이는데 당시의 기억을 잊지 않고 디딤돌로 삼고자 합니다”

불굴의 투지로 북변동 한국아파트 상가 5평여 남짓한 곳에서 2015년 7월 다시 사업을 시작한 윤진수 대표는 24억 매출 2016년 학운산단에 임대로 90억 매출 , 다시 2017년 5월에 1,200평의 땅을 매입하고 2개의 법인사업체를 우뚝 세우며 400억 매출을 이룩하며 주위의 이목을 한 눈에 받고 있는 중이다.        

군,관입찰, 온라인쇼핑몰, 무역업을 전문으로 하는 유통업체인 제이에스와이글로벌은 양촌읍 황금로 128번길 88 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윤진수 대표는 마당발, 관내 기업인과 김포대 케이텝 동문 및 상공인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통해 신뢰를 받고 있다.

대통령보다는 사업이 꿈이었다는 윤진수대표 (36세)는  부끄럽지 않은 돈을 벌고 싶다고 한다. 돈 버는 방법이 기가 막히게 보인다는 그는 윤민수 이사와 쌍둥이 형제로 무일푼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현재, 24명의 직원을 거느린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회사를 이끌고 있다.

2015년 1월 자본금 3억 1천만원으로 설립한 ㈜제이에스와이글로벌과 윤진수 대표, 정직과 책임, 신뢰를 기본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며 국가기관사업 및 온라인이커머그 수출입사업을 펼쳐나가는 그의 불굴의 에너지가 우리를 설레임과 희망으로 안내하고 있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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