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문화에서 집집마다 독특하게 자리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장독대다.
장독대는 음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장을
보관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종자(씨앗) 등을 보관하는 생활공간으로 역할이 확대되었으며 부엌과 가까운 거리에 두어 어머니들의 가정살림을 편리하게
해주었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역사풍속기행’에서는 “집 뒤에 차려진 장독은 바로 가정 살림의 중요한 한몫을 한다. 장 담그는 독은 질로 만들어서 쉽게 더워지거나 쉽게 차지지 않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장 담그는 날은 볕이 좋은 날을 택하며 바깥사람의 출입을 막는다. 외부의 균이 침입하면 장이 변질된다는 것이다. 또 장마가 들면 때때로 일정시간 햇볕에 쬐는 등 철저히 관리 한다”고 말하고 있다.
장독대가 실내에 있지 않고 실외에 있었던 것은 된장을 비롯한 간장, 고추장의 보관이 햇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며 집안의 앞쪽
보다는 뒤쪽에 두어 외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하여 중요한 것을 사람들의 손길과 눈길을 되도록 받지 않는 곳에 두어 부정 타는 것을
예방하고자 하는 의미도 갖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지금은 생활의 변화에 따라 된장과 고추장을 자급자족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로 생활환경이 변화 되었다.
장독대에 간장과 각종 장들을 보관하는 항아리들이 없어도 냉장고만 있으면 해결이 되는 생활문화로 바뀌었고, 장독대를 대신하는 냉장고가 예전처럼 부엌 옆에 있는 것은 생활의 편리성에서 시작되는 크고 작은 우리문화의 보편적인 특성이다.
채송화 울타리
옹기종기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항아리들이 순서대로 가지런하게 모아 놓은 장독대는 단지 보관하는 장소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내면에는 어머니들의 생활문화의 정신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은 항아리들을 크기 순으로 앞줄부터 뒷줄까지 순서대로 정돈하고 해가 들고 나는 시간마다 항아리들은 열리고 닫히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비가내리고 먼지가 날리는 날이면 항아리를 깨끗하게 닦아 놓는 정성이 깃든 곳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장독대에 정화수를 놓고 집안의 자손들과 자식들의 건강과 잘되기를 소원하는 장소가 되었던 것은 어머니의 가족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애틋한 마음이 서려있는 곳이다.
장독대를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 곳이기에 장독대를 꾸미는 일에도 어머니들의 보석과 같은 마음이 베어 있다.
항아리를 받치고 있는 토대에는 예쁜 조약돌과 다듬어지지 않은 평형의 돌들을 가지런하게 모아놓고 장독대 주변에는 색색의 채송화로 경계선을 치듯 울타리로 만들어 놓아 장독대에 접근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했던 어머니의 지혜가 남아 있는 곳이다.
여름에 장독대에서 보는 채송화는 두고두고 마음에 잔잔한 보석으로 남아있다.
민들레꽃 보다는 크고 땅을 벗 삼아 줄기를 땅위로 조금씩 높게 피어난 색색의 환하고 가지런한 채송화는 본래 전래식물로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 꽃이 되었다.
페르시아의 욕심 많은 여왕이 보석을 탐하다가 결국은 그 보석들이 산산이 조각나 채송화가 되었다는 전설과는 다르지만 장독대 주변에 심어놓은 채송화는 언제부턴지 부정 타는 것을 방지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장독대 항아리에 담겨진 각종 장들이 우리 음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보배로운 것이었듯 그것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손길과 장독대 주변에 피어있는 채송화를 가꾸는 어머니의 보석과 같은 마음은 채송화의 꽃말처럼 “가련함과 순진함”은 아니었다.
생활 속의 어려움을 말로 표현하지 않으시고 손길로 다스리고 다듬으신 어머니의 마음과
숙성의 시간과 정성이 함께 질그릇에 녹아 있어야
제대로 된 장맛이 나오는 어머니의 세월
속에서 실천하는 기다림과 세상을 보듬는 따뜻함을 반만 닮아도 좋을 세상이다.
정현채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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