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날마다 잔칫집만 같아라
   
▲ 유인봉 대표이사

어릴때 기억이다. 잔치를 하면 온동네가 같이 먹고 마시며 떠들썩한 즐거움속에서 보냈다.  옆집에 가마타고 시집오던 새색시와 그 진기한 결혼식을 문뒤에 서서 지켜보던 기억이 난다. 연지곤지 찍고 한복을 입고 시집온 그  새댁이 우물가로 물을 길으러 나오던 이른 아침의 마을 공동우물가도 생각난다.

맑은 샘물가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리던 새 새댁을 만났을때 어린 나는 쑥스러워 말도 못하고  새 새댁의 붉은 치마위에 덧 입은 하얀 앞치마만 쳐다보았던 것 같다.

그렇게 싱그럽던 기억은 마치 5월을 닮았다. 내게는 지상에서 가장 싱그럽게 기억나는 첫 순위의 이미지 한 컷이다. 잔치집 분위기는 언제나 좋은 것의 대명사처럼 기억되어 있다.

더구나 잔치집 새 새댁 주인공에 대한 호기심과  이미지는 어린 소녀시절의  내게 너무나 순수한 그림이자 싱그러운 에너지였고 지금도 생각만 해도 잔치집 같은 분위기로 살고 싶은 그런 좋은 이미지이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5월의 시작은 언제나 설레임을 준다. 사람이 살면서 설레일 수 있다는 것은 나이를 떠나 축복이다. 생의 에너지가 충만하지 않고서야 어찌 설레임이 있을까!

요즘  이렇게 억눌림 없는 설레이는 시간을 보낸다.
일단 사흘간 전쟁 걱정을 안하고 먹고 자고 일어나 일터로 향했다는 것이 꿈만 같지만 꿈은 아닐 것이다.
설레인다.

평화가 손에 만져질 것만 같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꽃피는 4월의 27일은 우리 모두의 ‘평화의 생일’로 기억하고 싶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설명이 필요없는 감격과 생생한 감동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남북의 정상 두 사람이 만나 악수하던 잊을 수 없는 모습과  이어지는 모든 일정들을 많은 눈들과 심장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온 몸과 마음의  세포하나하나가 모두 지켜보던 그날은 말이 필요없는 절절한 감격의 시간이었다. 모든 시선을 평화에 고정시키고 역사적인 포옹을 하던 두 정상의 그 모습을 뭐라 말하랴!

그토록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보고 싶었던 영변의 약산 진달래를 못보고 가셨던 시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눈물이 범벅이 되던 순간이다. 이산가족찾기에 나선 친구(지금은 남편)와 함께 방송국에서 날밤을 새우고 여의도에서 영등포로 터벅터벅 걷던 새벽길이 떠올라 더 울었다.

시아버지의 한이 된 그 분단이 우리만의 가족사가 아니었고 우리도 그런 슬픈 역사와 같이 흘러 강물이 되어 온 날들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연두빛 5월의 향기에 위로받지 못하고 분단의 아픔으로 이슬처럼 마르고 사라졌던가!

헤어지고 못만나고 그 멀던 길이 그렇게 가까웠던 길이고 막혀있던  것임을 확인하고 다시는 되돌아가지 말자고 다짐하던 남북의 두 정상의 한마디 한마디에 저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날 시간이 무르익자,  잔치집 분위기같았다지 않나.

그렇게 힘들었던 시간도 간다. 이제는 오래 녹쓸었던 시간을 모두 보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 이나라 이 민족이어야 하리라.

5월이 예순 여덟번이나 지나가고 나서 남북의 얼어붙어 영원할 것같았던 그 에너지가  변하고 있다. 8천만 겨레와 민족을 넘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감동을 이어나가는 5월이다. 더 속 깊은 내용 들이야 앞으로 이야기가 나차나고 이어져나갈 것이다. 이나라 이민족 우리모두 잔치집 분위기를 타고 있다. 뭔가 설레이는 국면, 전혀 다른 시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의 성취는 세계 곳곳을 새 호흡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성급하게 판단하고 좋아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일단은 우리모두 어린아이처럼 좋다.  무의식속에서 조차 늘 긴장과 전쟁의 위기의식아래 눌려살아온 한 민족이다.

어느 순간인들 전쟁의 위협에서 안전하다고 느끼고 살았던 시간이 있었을까?
늘 꿈을 꾸면 군인들이 총칼을 들고 있었다. 무의식에서도 그런 군인들을 피해서 어디론가 숨을 곳을 찻던 숨가뿐 꿈에서 깨어나면 무서워서 엄마품을 찾아들었던 기억이 난다.

해마다 “이승복어린이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반공글짓기대회에 단골로 출연하여 글도 짓고 웅변도 하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6.25때 위의 언니는 6살 오빠는 9살이었다. 그리고 전쟁 아래 태어난 오빠와 언니들의 배고픔과 공포를 우리는 전해듣고 살았다.

형제들의  끝자락인 나는 5.16의 시대에 세상에 나왔으니 그 참혹한 언니 오빠들의 시대의 암흑기는 벗어나 세상에 태어난 셈이다.그래도 역사와 민족의 아픔은 그대로 전염되고 전쟁이라는 말에서 무감하지 못한 무수한 날들을 보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의 입에서 종전이라는 노래가 이어지다보면 종전의 평화로운 나라에서 살날이 있으리라.

날마다 요즘 같은 잔치집의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다. 북미회담을 앞두고 두손을 모은다.
떠나고 싶었던 나라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와서 살고 싶은 기회의 땅, 새하늘과 새땅의 기운이 우리에게  소망으로 다가오게 되기를.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 기회가 되면 북한에 아버님이 남겨두고 오셨다는  그 형제들 찾을 것 같아요?”
“응” 남편의 단단한 한마디가 망설임없이 내게 돌아왔다.

그 형제들은 어떤 모습일까? 언젠가  아버지를 만난듯이 그렇게 얼싸안고 잔치집같은 분위기로 형제지정을 나눌 수 있을까?
소망은 보이지는 않지만 믿고 바라고 구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일은 언젠가 때가 되면 현실이 될 것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인봉 대표이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