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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경작하고 바라보라
   
▲ 유인봉 대표이사

봄비가 온다는 소식에 부지런히 장날묘목 을 찾아 나섰다. 모판에서 뾰족하게 나온 새순들이 아기 손처럼 여리고 곱기만 하다.  봄이란 심는 계절이다. 처음 몇 년전 텃밭을 시작하고 밭을 갈 때는 돌을 무던히도 골라냈던 기억이 난다.

해를 거듭할수록 밭이 곱고 땅이 정겹게 느껴진다.  심어서 거두었던 작물 중에서 더 심어야 할 것과 덜 심어야 할 종목도 정해진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린아이 손만큼 자라난 오이 하나를 따서 베어 먹던 날의 싱그러움과 금방 따서 생된장에 싸먹는 상추나 토마토 그리고 작지만 맛으로 으뜸이었던 고구마를 올 해도 기대한다. 

사람도 자연도 서로 길이 나야 하고 익숙해져야 하나보다. 지난 날, 어머니 아버지가 논을 매고 밭을 일구던 것의 고단함을 알기에 서둘러 연필 손에 쥐고 사는 삶으로 도망 나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의 품을 찾듯이 이제 씨앗을 심으면 싹을 틔우고 열매를 주는 자연에게 서서히 돌아가 고 있다.  ‘대지를 경작하고 굽어보는 자’의 넓고 자연스러운 ‘품위’가 가장 멋지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사실 인생의 모든 것 또한  심고 거두는 이치가 아닐까!  심으면 거두게 되어 있다.

거두는 것이 자신이 아닐 수는 있지만 심은 사람이 있으면 거두는 사람도 있다. 심지도 않고 낫을 들고 거두려는 사람도 있다. 가장 좋은 법은 봄에 밭을 갈고 정성껏 씨를 뿌린 사람이 자연스럽게 추수를 하는 것이 맞는 일이다. 남의 밭에 가서도 자기 것인양  열매를 찾고 거두려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라 심는 복이 더 소중함을 배운다.

누구나 머물다 사라지는 공간인 대지를 만나고 씨앗을 심는 기회를 만난다는 것은 큰 감사함이다.  우리는 편하고 싸게 사먹는 것에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심고 기르는 것들의 세밀한 즐거움이 자못 크다.

심는 즐거움과 열매를 보는 즐거움으로 우리의 상처가 치유되고 미래를 희망할 수 있다. 대지를 힘차게 걷는다는 것도 좋지만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매우 다른 축복이다. 흙과 서로 친해지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은 온전한 삶으로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시간이며 씨를 심고 나면 생명이 자라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으로 이어진다.  

사람도 구체적으로 만나서 민낯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듯이 흙과의 만남도 어떤 공감의 시작이 있다. 고단하고 힘들지만 흙을 만지고 고랑을 만들고 심는 과정이 인내라는 힘을 준다.  

몸이 고단할 만큼 움직이고 났을 때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것은 노동의 진가이다. 머리를 너무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몸의 움직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몸과 마음 그리고 손발의 부지런함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가를 흙에서 배우고 있다.

대지를 경작한다는 것은 작으나 크나 경험한 이의 축복이다.  산길을 걸으며  연세가 지긋한 한 어머니가 산 기슭에서 호미자루 하나를 가지고 작은 땅을 일구어내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어엿한 한 자락의 밭이 되어 있고 이미 잘 발효된 거름이 여기 저기 뿌려져 있었다.

아마 며칠 후 그곳에도 새 생명의 싹들이 자라게 될 상상을 해보았다.   누구나 도시의 편리한 생활에 익숙하다. 보다 더 편리한 것들을 찾아서 이동한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행복한 삶의 느낌과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여기 저기 땅의 여유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대지를 일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타고난 재주와 절박함으로 도시에서 성공하느라 애쓰는 이들이 얼마나 많으며 실망과 절망의 숲을 헤매느라 밤이슬을 맞기도 한다. 더 젊은 날 흙의 냄새를 알았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산을 30대쯤에 발견하고 지금 밥 먹듯이 그토록 찾고 사랑하듯이 흙을 발견하고 만지고 있다. 힘이 들면 철퍼덕 하고 앉기도 하고 옷 매무새 또한 흙투성이가 되어도 자유롭다.  흙을 만지며 손톱 밑에 풀물이 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때 만나는 것이 잔잔한 평화다. 

작지만 직접 자신의 손으로 흙을 파고 호미질로 생명을 심어보는 일은 각박한 마음을 봄비처럼 적시고 살아있는 생기를 받는다. 자신을 살아있는 듯이 살게 하는 싱그러움을 만나는 것들은 정말 좋다. 이 봄에 희망을 심어보고 여름이나 가을엔 거두어 보자. 그리고 나누어 주는 풍성함이 가득하길.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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