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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야 산다유인봉 대표이사
   
▲ 유인봉 대표이사

언제 겨울이었는지 지금은 금방 잊어버리고 봄날을 산다.
더울 만큼 푹해진 날씨에 종일 문을 환히 열어놓고 산다는 것이 그렇게 좋다.
추위를 많이 타는 까닭에 날씨만 춥지 않아도 살 것 같다.

가장 살기 좋은 날씨가 진달래 피어나는 이때인 듯 싶다고 매년 생각한다. 적응하고 살기가 힘든 시간들도 있지만 이런 고운 시절도 있어서 살만한 것 아닌가!

어느 사이 돋아난 쑥 한 줌을 뜯어서 향기 나는 부침개를 만들었다. 봄 쑥의 향기나 냉이나물이나 시절이 주는 생명의 향기들이다. 산천이 피어나는 시절이라 알 수 없는 기쁨이 우리 몸과 마음에도 찾아온다. 방안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아니라 한 걸음 밖으로 나가서 찾고 만나는 기쁨이 있다.

내 삶을 바꾸는 봄의 출발이라고 할까! 더 좋은 삶의 질과 지속적인 기쁨의 시작은 일터와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변화들로부터이다. 봄의 시작으로부터 우리는 다시 우리들의 마음의 자갈밭의 돌을 골라 내며 자갈밭을 갈아서 옥토로 만들고 씨를 뿌릴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마음속의 밭을 간다는 것은 지난 날들, 겨울을 지나며 생긴 아픔과 상처들을 어루만져주고 스스로 보듬어 주는 것이다.
지난 해는 개인적으로 많이 아프고 힘들어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들도 있다. 마음 속의 화와 한이 생길만큼 아픔이 컸다.

옆에 늘 바위같이 든든했던 남편의 오랜 아픔, 연이은 대수술과 보살핌의 과정 속에서 눈물도 아픔도, 고통의 상처가 컸었다. 사람이 살면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 존재 한다면 아마 한 눈금 그어진 시간들이다.

남편에게 밥을 먹어주며 느꼈던 사랑도 있다면 절망과 두려움도 있었던 시간들속에서 끙끙 앓으면서 또 살아내느라 억지로라도 웃어가며 지냈다. 파도처럼 무력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렇게 어서 봄이 오고 생명이 다시 돋아나는 모습을 갈망했다. 파랗게 돋아나는 쑥과 냉이는 많이 힘들어했던 지난 시간들을 위로하는 생명의 싹이고 부활의 에너지이다.

지금까지 혼자 참아내느라 힘들고 애썼던 에너지가 해방되면서 떨치고 일어날 힘을 준다.
누구나 지난 시간들의 화나 한이 풀어지면 자연히 다시 일어날  힘이 마음속에서 솟아나올 수 있다. 지난 시간들의 엉킨 에너지들을 쓰레기통을 안고 살 듯이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좋지 않았던 이미지와 기억들은 잊어야 산다. 빨리 잊어버릴수록 좋다. 날마다 놓아주고 잊어야 건강하게 산다.
그렇게 하는 시간속에서 풀어지고 녹아지고 잊혀지고 애써 다독이며 잊어가면서 다시 새봄의 밭을 일구어내는 것 아닐까!

때로 “힘내라”는 말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며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것이 더 힘이 될 수 있다. 우리들 마음속에 힘들어 생긴 응어리들이 뭉쳐진 채로 몸으로 나타나 아픔이 되기도 하는데 늘 혼자 힘들어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길을 지나가다 읽은 한 줄의 문장이 나를 풀어주기도 하고 이름 모를 새가 아침을 깨우는 소리에 녹아지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곳을 거닐며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다 던지 우리들의 일상에서 축복의 소리를 만나는 것은 그렇게 지난 아픔과 고통을 잊고 다시 살게 하는 에너지이다.

나를 힘들게 한 시간들, 그리고 사람들, 고통들과 화해하며 다 기억하려 하지 말자!
며칠 전, 책 한 권이 배달되어 왔다. ‘알츠하이머의 종말’이라는 다소 두터운 책 한권이 내앞으로 왔는데 다름 아닌 아들의 선물이었다.

남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잘해, 벌써 아들이 치매 걸릴까봐 걱정하게 하지 말고”
부엌의 가스불을 켜놓고 잊어버린 일, 핸드폰을 찾는 횟수, 그렇게 점점 잊으면 불편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아이들의 눈에 내 증상이 걱정이 되었던 걸까!

자꾸만 깜빡깜빡 잊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세상의 모든 일들을 잊어야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치매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두고 가는 자식들을 잊고 떠나셨던 부모님들.

생과 사를 가를 때 그렇게 꿈에도 잊지 못할 자식들의 얼굴, 이름조차 잊어서 누군지 모르던 어버이들의 그 나이는 자연스러운 것 아니었을까! 그때까지 그렇게 열심히 살면 되지 않을까!

마지막에는 이생의 모든 것을 잊어야 할 날, 자신조차 다 잊어야 할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날마다 잊어야 할 것은 잊어서 까맣게 기억도 나지 않으면 좋겠다.

응어리는 풀어내 멀리 보내고 좋은 기억과 이미지만 기쁘게 씨를 삼아 봄날 새 밭을 갈고 새 희망을 뿌리고 심을 일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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