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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키다유인봉 주)미래신문 대표이사
   
▲ 유인봉 주)미래신문 대표이사

저녁부터 하얀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내일 새벽이면 다시 눈을 치우러 너까래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겨울을 지나는 이번 경험중에 제일 영향을 받는 일은 눈을 치우는 단순한 일이었고 불을 지키는 것이었다. 눈은 하루만 오는데 눈이 미치는 영향은 오래간다.

산골일수록 그것은 더 오래간다. 이제 눈이 거의 다 녹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다시 하얀 존재를 알리듯 내리는 눈이다. 눈을 체험하는 것은 두가지이다.

눈을 밟으며 산길을 걷는 행복은 대신해 줄 것이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하지만 앞마당과 길가의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세세하게 눈을 치워야 하는 일은 중한 일이다. 눈을 치우는 단순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일들에  숙련되지 못하고 헉헉댄다. 

또 나무타는 냄새의 치유는 더할 수 없이 좋지만 날마다 불을 지피고 꺼뜨리지 않고 실내온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편리한 세상에 이다지 불편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

불이 잘 피려면 나무를 적당량 넣어주어야 하고 환기도 적당해야 한다. 그럴 때면 자식들 춥지 않게 하려고 이른 새벽 군불을 때던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시간을 맞추어 아기에게 젖을 주어야 하듯이 불을 보살피는 일도 또 그러하다.

너무 세지도 않고 은근하게 실내온도를 높이도록 실제 불의 온도와 실내온도를 들여다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불을 보살피다보면 하루가 빨리 간다.

누군가 주택에 살면서 인부로 사는 거라고 했다더니 바로 그말이 맞다. 편리를 마다하고 선택한 삶에는 순간 순간 노동과 수고가 바로 밑받침 되어야 한다.  몸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이름 모를 수많은 노동하는 이들의 삶이 남같지가 않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던 그 넓은 공간들의 눈을 치우는 이들, 세상에 고맙지 않은 이가 없다는 것이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만져지듯 느낀다. 몸을 움직여 사는 일은 누구나 적당하게 하며 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손과 발을 많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머리속이 하릴 없이 우울한 시간은 없는 듯하다. 옛날 등이 가려우면 어머니의 거칠거칠한 손바닥으로 썩썩 문지르시면 시원하듯이 내 손이 이제 그리 되어버렸다. 손끝의 지문이 없어진지 오래라 인감증명서를 떼러 가니 이손가락 저손가락 다 갖다 대도 인식이 안된다.

어찌되었든지 삶의 따스한  온도를 유지하는 일에 가리지 않고 스스로 충성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조건이나 일들이 무조건 유리하게만 펼쳐지거나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우리들이 선택한 삶도 늘 변화하고  고정적이지 않다.  

아이들은 이제는 그렇게 불편한 삶을 놓고 다시 도시적인 편리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충언하기도 한다. 그렇게 불편한 일에만 매달리다가 보면 다른 일을 할 힘도 시간도 기회도 줄어든다고도 한다. 젊은 눈으로 보면,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하게 살면서 우리 부부에게 상징적인 한가지가 있다.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머리카락이 빠지지도 않아 무성할 뿐더러 하얗게 변하는 것이 더디다는 거다.

아직까지 하얀 머리칼을 찾아내서 셀 수 있는 것은 60대를 내일 모레라고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흔한 일이 아니라고들 한다.

스트레스가 그래도 상대적으로 적은걸까라고 생각해본 일도 있다. 단순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산 속의 삶이다.  

밝아오면 일어나고 어두워지면 잠자고, 눈이 오면 치워야 하고 불을 때서 살고 많은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눈앞의 강아지들과 이야기하고 눈 맞추며 살다보면 어느 사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된다.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선택하고 사는 삶에는 남다른  고요가 있다. 저녁 잠자리에 들면 낮에 많이 움직이다보니 고단해서 몇 초내로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린다. 엉성한 집이나마 머리대고 누워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이 있음은 대단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대신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고  댓가도 만만하지가 않다. 
한 달 내내 달이 어떻게 차올랐다가 기울어가는지를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은근한 멋이고 맛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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