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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김치유인봉 대표이사
   
▲ 유인봉 대표이사

식탁을 차리다보니 김치 일색이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등 가을걷이한 채소들이 긴 겨울을 날 김장으로 맛깔스럽게 김칫독에 들어가 있는 계절이다.

이집 저집의 김장 맛은 다 손 맛 따라 각양 각색이고 다 맛이 다르다. 제일 좋아하는 것중의 하나가 바로 동치미인데 동치미에 국수를 말아먹는 맛은 뭐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이 좋다.

우리는 머리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맛으로 사는 것이 아닐까!
맛의 차이를 감별해 내는 입맛도 신기한 일이지만 같은 배추김치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맛은 누구의 손과 맛을 만나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라진다.

식탁을 보니 형제들의 김치가 다 모였다. 큰 언니 김치, 둘째 언니 김치, 이웃에서 나눠준 김치 등으로 12월 내내 김치로 식탁을 차리며 마음이 부자가 된 것만 같다.

요즘은 다들 귀찮아서 사먹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점점 더 우리 어머니들의 세대가 힘들어가며 김치를 만들고 자식들의 집에 퍼 날라 쟁여주던 그 모습을 그리워한다.

김칫독들이 나란히 흙속에 묻혀 김치광이 만들어지고 그 위에 하얀 눈이 내리던 모습이 선하다. 김칫독에서 갓 꺼낸 한 포기의 김치는 싱그러운 맛 그 이상의 한국인의 그리운 ‘맛’이다.

인생을 잘은 모르지만 그 정서는 아직도 내 인생의 보고이다.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그 추운날 윗목이 꽝꽝 얼어붙어도 나란하게 한 방에 누워 자던 형제들과 문풍지에 부는 바람을 귀의 노래로 들으며 살던 그 시절의 맛을 기억해본다.

지금의 편리보다야 다르지만 그 시절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얀 밥에 김치 한 조각을 얹어 먹고서 살아남은 날들 아닌가!

어느 사이 편리함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길들여지는 과정 속에서 진실로 몸과 마음으로 오롯하게 살고 가야 느끼는 소중한 정서들이 사라져가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한다.

머리로 빠르게 적응하며 사는 세상도 좋기야 하겠지만 자신의 손과 발과 몸을 다 동원해서 사는 것도 여간 좋은 일중의 하나가 아니다.

몸으로 걸어보면 온 몸이 그 과정에서 말을 한다. 다리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반응을 한다. 몸의 체증도 뚫리고 마음도 가벼워진다. 많이 걸어본 사람을 보면 눈빛도 다르고 기운차다.

형제들이 티격태격 싸우든 시절에도 책보를 둘러메고 산길을 걸어 학교를 가는 동안에 그만 다 풀리고 말던 일이 생각난다.

지금도 우리 형제들은 가을이면 김장김치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함께 노동을 하면서 모자라는 부분들을 서로 채워주며 6남매가 우애있게 살아간다.

내게 부족한 솜씨가 형제들에게 있고 형제들을 의지하며 이것 저것 앞서서 살아가는 형제들에게서 삶을 배우고 채워 나간다.

화롯불에 볶아먹던 김치볶은밥이나 여러형제라 다소 음식이 모자라 물을 더 넣어 늘여서 끓여먹던 음식들이 가난했지만 단순하고 행복했던 날들이다.

어쩌면 이렇게 삭막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정서를 가지고 자신을 치유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부모님들이 아니고서 이 세상에서 가장 유전자가 닮은 형제와 이웃들이 있고 추억도 아픔도 그리움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복이다!

요즘은 배고파서 눈물이 나지는 않을지라도 외롭고 그리움에는 눈물이 난다.

뭐라고 생각의 틀을 잡을 수도 없이 터져 나오는 것은 모두 우리에게 필요한 진실이다. 그것이 눈물이든지 웃음이든지 신명이든지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들이다.

남이 보기에 좋은 듯이 살기보다는 자신의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조차도 자연스럽게 흘러내릴 수 있는 있는 삶과 맛이야 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할 우리들의 맛이고 진정이다.

맛있게 익은 김장김치 한 조각을 가지고 쭉 쭉 찟어 밥 한 그릇을 먹어도 근심 걱정 없이 앞 뒤가 편하면 잘사는 인생이다.

식구들 편하고 등 따스한 삼동 겨울을 그린다. 마음에 소박하게 그린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그리 큰 욕심은 아닌 듯 하다고 믿는다. 푹익어 맛있는 김치와 함께 건강한 겨울나기를 소망한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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