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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 넘치는 젊음, 장사의 神에 도전하다동경 야시장 - 김래원 대표
   
▲ 김래원 대표

통일이외에는 다 할 수 있다는 무서운 젊은이 장사의 神에  도전하다

높은 청년 실업률이 뉴스를 달구지만 2017년 12월, 환희와 열정, 그리고 희망을 많은 이들에게 선사하는 이색청년사업가가 있어 소개한다.

올해 3월 봄 모이는 새로운 물줄기로 통하는 구래동에 창업하여 7개월 만에 매월 3천여만원의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무서운 청년사업가는 다름아닌 “동경야시장”의 김래원 대표(32)이다.

저녁 5시이면 동경야시장은 시작되고 새벽 5시에 문을 닫는 이곳에서 젊은 김래원의 새로운 도전은 날마다 계속되며 자신의 목표와 기록을 갱신해 나가고 있다.

“고객은 기다리면 옵니다. 안된다고 빨리 문을 닫으면 안 됩니다. 소위 장사를 하면서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잘나가는 성장기업의 2세경영인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시도로 장사를 도전해 나가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제2, 제3의 도전과 아이디어 창출이 마구 샘솟는다고 한다. 

관내의 강소기업인 해성워치텍 김용회장의 차남인 그가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도전정신으로 동경야시장을 오픈한 것은 올해 봄이다.

가족과 주위의 결사반대가 있었지만 이를 무릎쓰고 이미 사업을 실행하여 계약을 마쳤고 엄청난 주위의 반대를 뚫고 의지를 관철하고 오픈한 것이 ‘동경야시장’이다.

사업자금은 모조리 자신의 통장잔고와 대출실행으로 시작되었다.

편한 길을 놔두고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자신의 생각을 사업으로 현실화한 그는 일단 매일 매일 돈이라는 것을 어떻게 버는 것인지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젊은 열정과 온몸으로 배워 나가고 있다.

물론 7개월이 지난 지금 대출금을 거의 다 상환한 것은 물론이다. 이를 멘토로 후배 두 명의 새로운 청년사업가의 창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청개구리 아들의 못 말리는 창업과 일취월장 

그렇게 공부하는 학업을 길을 가게 하려 해도 청개구리였다는 김래원 대표.

한 번 돌아서 버리면 결코 안 돌아오는 아버지 김용 회장의 노여움과 무서운 얼굴이 풀린 것은 동경야시장을 오픈한지 7개월 만에 사업성을 마스터하고 원가 절감 및 인원 슬림화로 빠르게 안정되는 아들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부친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젊은 날 서른 두 살, 때는 4월이었듯이 아들인 김래원 군이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업을 시작한 나이도 정확하게 32세, 아버지인 김용 회장보다 1개월 빠른 3월이었다.

사업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일까? 김용 회장도 결국은 못말린 김래원의 목표가 있는 도전에 아버지인 김용회장은 아무도 모르게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아들가게를 찾아 몰래 들여다보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아버지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강하게 키워주셨습니다. 24살에 독립해서 살아라 하면서 쫓아냈습니다. 네가 안나가면 내가 나간다고 하셨지요. 의지하는 성격이 있었으면 못했습니다. 의지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는 힘을 길러주셨습니다.

안 해보고 후회하는 길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낮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닿는대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다 해볼 겁니다”

김래원대표는 3시간만 자고나와 일하며 다시 요리를 배우러 배움터로 달려간다. 현재 일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기계과(동양공전 졸)를 전공한  학창시절에는 그렇게 공부를 안했단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손님이 먹고 싶어하는 것을 찾아 스스로 요리와 음식연구에 집중하고 열심을 다하고 있다.

“저의 학창시절에 공부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겁니다. 컴퓨터학원 3개월 등록을 해주셔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저는 스스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스스로 버는 돈이 좋습니다.

저 스스로 독립적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솔직히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먹어도 제가 벌어서 사먹으니 더 맛있습니다 하하”

경쟁업체와 뭉치며 상생의 길로

야심찬 도전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자리를 잡은 김래원 대표는 초긍정의 마인드로 이곳 상권의 젊은 사장님들과 신명나게 사업을 일구어나가고 있다.

삼국지의 관우 장비와 같은 이미지라고 할까, 눈매가 부리부리하고 목소리는 힘차고 활기가 넘친다. 해병대 1005기라고 소개하는 젊은 사장님, 김래원 대표와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의 기운이 훨 훨 나는 솔개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다부진 각오로 시작한 자신의 사업에 대한 긍정이 엄청나다. 주위 상가들과의 친분도 두텁게 쌓아가며 틀을 만들어 일하기 좋은 상가분위기를 조성해나가고 있다. 다양한 컨셉이 있는 거리만들기와 서로 경쟁업체지만 상생업체라고 넓게 생각한다.

지하철 종점인 구래역이 놀거리, 먹을거리가  풍성한 시민들의 문화의 거리가 될 거라고 믿고 있다.

“저는 무엇을 하든지 겁이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통일 밖에 없습니다. 통일만 빼고는 다 가능합니다!”

미래가 창창하게 보장되던 기업인 2세로 희망차고 안정된  자리를 스스로 내 놓고 고생을 작심한 젊은 도전을 통해 김래원 대표는 새로운 자신의 사업가의 지도와 인생을 만들어가는 대한의 아들이다.

김래원 대표에게는 고객으로 왔다가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투자를 하겠다는 투자자가 나타날 만큼 인정을 받고 신뢰를 받는 기분 좋은 일도 있다.

“저는 생각만 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생각했으면 해버려야 하고 먼저 뛰어가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배우고 단골손님들에게 진짜 맛을 보여드리기 위해 고창까지 가서 닭발을 배우고 있습니다.

카레의 6가지 맛을 습득했고 너무 싼데 이렇게 가면 되겠나 하면서 걱정해주는 단골 손님들도 계십니다.

저는 밥을 못먹습니다. 간을 봐야 하는데 배부르면 맛을 못보거든요”  라면밖에 안 끓여보았다는 김래원대표는 손님에게서 진짜 맛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그 스스로 맛을 연구하며 더 좋은 맛을 선사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주일 중에도 목, 금, 토요일에는 최고로 장사가 잘 되고 있다.

활발한 성격의 김래원 대표는 주변 상가의 젊은 사장님들과의 교분도 두터워 서로 의논하면서 사업을 추진해나가는 중심적 역할도 도맡아 하며 즐거운 제안에 앞장서고 있기도 하다.

영원한 반장과 대장으로 앞장

김래원은 어려서부터 용감한 아이로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반장, 회장을 도맡아 해온 대담한 아이였다. 제일고 총학생회장으로 폭넓은 관계를 쌓으며 마당발로 불리기도 했다.

현실은 냉정하게 직시하고 타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김래원 대표. 건강하면 못할 것 없다는 생각으로 길거리표 운동화를 신고 신명나게 일하고 뛰어다닌다. 그는 명품을 입기보다 스스로 명품이 되고자 한다.

“저희 집 가보가 있습니다. 챙피는 순간이고 이익은 영원하다. 자고로 공짜는 없다는 겁니다. 절대로 공짜로 먹지 말라는 말씀이셨고 보증과 돈거래는 하지 말라는 겁니다”

“저는 누구의 아들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김용의 아들이 아닌 김래원으로 살고 싶습니다. 어려서부터 지는 게 싫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무조건 손들고 반장을 했습니다.

사람은 끌고가느냐 아니면 끌려가느냐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 안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는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앞만 보고 갈 것이고 무조건 갑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만날 가치도 없다고 믿고 있고 제 주변에는 부정적인 사람은 없어요. 부정적인 사람이 있으면 서로 같아지니까요”

올해 32세 겨울을 보내며  김래원은 새로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스터 해내고 있고 이제 또 하나를 즐겁게 구상하며 계획하고 있다. 제주도에 몇 발자국 나가면 바닷물이 발에 잠길 만한 그러한 시공간에 와인샵과 맛있는 파스타가 함께 있는 맛과 꿈의 일터를 꿈꾼다.

“아마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이루어질 꿈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직은 명함을 파지 않고 자신의 얼굴이 명함이라는 이 무서운 젊은이의 도전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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