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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 입안의 혀도 깨문다유인봉 주)미래신문 대표이사
   
▲ 유인봉 주)미래신문 대표이사

우리는 대부분 우리 자신들의 삶을 잘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최선의 판단을 했는가, 어떤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살피면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관계를 맺는다.

그런 노력의 결과가 예상한대로 나올 수도 있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생각하지 못한 결과를 만날 때가 있다.
우리들이 목표를 정하고 가는 길의 종착점은 대부분 가늠할 수 있지만 우리 자신이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결과 전혀 다른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있다.

누군가를 만나 같이 동행하는 가에 따라, 또는 어떤 일이 생기고 그 일에 영향을 받은 모습에 따라도 목적한 바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12월이 되면 늘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새롭게 정비할 수 있는 기회와 성찰의 한 가운데 마음을 두면 좋겠다.

정치를 재개하려는 이들도, 사업을 다시 시작해서 명성을 찾으려는 이들도 그렇다. 정작 건강을 잃어서 다시 시작하는 출발선 앞에 선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시작하는 거다. 누구나 가다가 잘못 가거나 길을 잃어버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살피면서 가면 길을 제대로 찾을 수가 있다.

왜 이 길을 가려고 하는지에 대해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나 어떤 일도 할 수 있지만 사명을 느끼고 신명을 다해 일을 하는 사람과 눈앞의 이익에 치우쳐도 일을 도모하는 사람의 생명력과 공감은 다르다.

많은 이들은 살아서만 사는 줄로 여기고 바로 지금 가진 물질과 명예에 집착이 크고 깊다. 좋은 사람과도 인연이다가 집착함으로 악연이 되고 어리석은 인연줄에서 고통을 당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날마다 지나가는 숲이나 나무 그리고 새와도 그 날의 인연이 될 수 있고 위로가 클 수도 있다. 스치는 옷깃으로도 인연을 알아보고 살릴 줄 알기도 하고 지나쳐버려 모르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를 지나 365일의 가장 끝자리 쯤에 왔다.

 사람은 살아서 백년을 넘어서기 어렵지만 죽어서는 천년도 넘어선 사람도 있다. 살아서보다 죽어서 훨씬 더 명성이 높고 여러 사람을 살리는 이도 우리는 만나고 살고 있다.

살아서 그 사람의 품성과 삶의 질이 시공간을 넘어서고 언젠가 누구에겐가는 구원과 해원으로 가는 훌륭한 안내의 길도 되고 산이 된다. 그것이 영원성과  우리들의 에너지이다.  생각하면 참 삶과 그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 늘 숙연해진다.

바쁘게 살지만 1년에 한 번쯤, 그렇게 자신을 더욱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시공간속에 생명으로 존재함을 고맙게 그리고 충분하게 느낄 일이다.

이리저리 재어보고 사는 것보다 품고 사는 편이 훨씬 더 좋은 일도 많다.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살았지만 목표했던 결과가 충만하지 못했다 하여도 우리는 엉겹 결에 내 입안의 소중한 혀도 깨물 수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자.

가장 중요하게 보배로 품고 있던 것, 아무리 아까운 것이라 해도 잃어버릴 수 있고 아플 수도 있다. 우리들의 인생이란 그 모든 것들이 다 지나가는 것으로, 기억 저편으로 희미해지는 순간이 온다.

진실함보다 권력을 탐할 일도 아니다. 소화할 수 있는 만큼 먹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본인을 넘어 타인에게도 해가 되는 일이 권력이어서는 안된다.

어떤 힘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어디로 달려가고자 하는지 돌아보고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 
정말 하고 싶은 일과 중심을 잃지 않고 순간을 영원으로 살 일이지만 자신의 숨결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놓쳐버릴 만큼은 아닐 것이다.

한 숨결 한 숨결의 아름다움과 여울을 느끼고 살아가고 그 고운 결의 느낌과 생생함을 안고 살자.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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