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유인봉 칼럼
<시론>줄기세포 생명윤리 논란 큰 시야 필요세포단위 생명태, 생명체로 확대해석은 무리

 줄기세포 연구와 생명윤리의 논쟁이 뜨겁다. 줄기세포 연구는 줄기 세포로부터 원하는 체세포 덩어리를 배양하여 난치의 병소에 이식하겠다는 것으로 21세기 의학 발전에 획기적 공헌이 기대된다.

줄기세포(stem cell)의 중요성은 모든 세포로 발전되는 근원적 세포라는 데 있다. 가장 원초적인 생명 단위인 셈이다. 15마이크론 크기의 세포에 모든 유전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충만한 세포이다.

그러나 아직 세포단위의 생명태를 생명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생명체란 홀로 독립하여 수명이 다할 때까지 존재하며 활동하는 것으로 단세포 생물이나 미생물들도 생명체에 포함된다. 하지만 줄기세포는 단독으로 존재 가능한 생명체는 아니다.

난자와 정자도 단독으로는 생명체라 할 수 없다. 생명체는 주체성이 있음을 의미하며 생명체를 이루는 수많은 세포 하나하나가 독립된 생명공화국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 세포들이 모여 긴밀한 상호 연계를 통해 보다 큰 조직과 장기, 그리고 개체를 형성하여야 생명체로 가치를 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의 연구가 인간 복제 가능성의 위험이 높으므로 연구를 반대한다는 게 일부 종교인들의 작은(?) 시각인데 그 논거가 과연 정당한가? 줄기세포의 폐기를 살생으로 규정하는 것은 줄기세포를 생명체로 확대 해석한 오류 때문에 무리가 있다.

난자를 제공받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윤리적 문제 등 부정적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사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늘진 부분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늘을 우려해서 밝음을 회피한다는 것은 좁은 소견이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 과학 문명은 발달해 왔다. 과학의 부정적 파괴적 기여도 비례하여 증가하였지만 부정적 측면도 인간 욕망의 결과이지 학문의 탓이 아니다.

 인간의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의 하나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질병의 치유에 헌신하는 의학의 발전은 부정적 단점이 있다 해도 소중히 평가되어야 한다.

불치의 병을 앓거나 평생 치료받아야 하는 만성적 질환들에 대해 획기적 대안이 있다면 두 손 들어 환영하여야 할 일이지 미래에 발생할 부정적 결과를 예상하여 반대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관념적 논쟁이라는 느낌이 든다.

불치의 장애를 갖고 있는 당사자나 가족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에게는 공감할 수 없는 철학적 논의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라는 속담이 이 경우에 알맞은 표현이다. 인류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고 해방시키는 것이 종교의 사명일진대 종교적 대의와도 어긋나지 않다.

 과학과 배치되는 종교 논리는 수정될 수밖에 없다. 과학이 밝힌 부분은 실험과 검증을 거친 최소한의 지식 영역이다.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등에 의해 좁은 의미의 고정적 우주관은 무너진 지 오래다.

창조에 관련하여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주장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소중한 의견이다. 그러나 창조의 의미가 고전적 해석만을 고집한 채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해석하지 않으면 종교와 과학은 양립할 수 없게 된다.

우리의 부족한 생각은 학문의 발전과 사유의 심화를 통해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한다. 좁은 시각으로 대표되는 고정 관념은 벽을 쌓고 단절을 초래하여 깊은 갈등을 낳는 원인이 된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 정신의 숭고함은 다 다룰 수 없다. 합리적으로 분석 가능한 영역만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다룰 수 없는 부분은 아직도 종교의 성스러운 영역이다.

거기에는 사랑과 연민이 담겨 있다. 과학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방향이라면 단연코 제동을 걸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세계가 놀라고 경외하는 연구가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다. 세포단위의 살생을 논하려면 보이지 않는 미물의 생명도 경시하지 않아야 한다.

내 몸 안의 수많은 세포들도 가학적 생활 습관, 예를 들면 담배, 술, 환경 오염 등에 의해 무수히 살상 당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된다.

좁은 시야의 정치적 논리와 종교적 논리로 학문의 세계에 간여하면 학문의 위축이 오고 자유로워야 할 정신 영역을 오히려 구속할 수 있다. 보다 큰 시각이 필요하다 하겠다.

최훈동 <한별병원병원장, 서울의대 초빙교수>

 

편집국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국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