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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봉 주)미래신문 대표이사 | ||
바늘만한 틈새(crack)가 생기는 날이 있다.
어느 날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하 아파트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내게 전화를 한 이가 있었다.
누군가도 가끔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는 날도 있다.
“시간 좀 있느냐, 만날 수 있느냐?”고 했다.
다급한 느낌이 들어 즉시 “지금”이라고 말했다.
내가 한 일은 귀를 열고 그의 이야기를 가감이나 비판 없이 들어주는 것이었다.
세상사 다 있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났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일이 죽을 만큼 특별한 일이 될 수 있다.
함께 청소하듯 털어낼 누군가와 시간 그리고 그럴만한 장소가 필요하다.
나보다 더 인생을 많이 살아온 그에게 설교는 필요 없었다.
그의 소설 같은 인생보따리가 풀린 시작이었다.
사람이 60년 이상을 살면 그를 두고 생명이 태어나고 생명이 저 세상으로 가기도 한다.
이러저러한 힘든 사연과 인연들이 스쳐가고 아프게 하며 상흔으로 남기도 한다.
듣도 보도 못한 일들도 누군가에게는 일어난다.
어느 순간 최선을 다해준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깨어져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무 하루째였다고 했다.
매를 맞아 아픈 일보다 귀로 들은 말로 입은 자존감의 상처는 두 손을 놓게 하고 두발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무엇도 자신 있고 무너지지 않던 태산 같던 마음도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의미있는 타인으로부터 바늘만한 틈새로 무너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가 없다.
본인에게‘소도 때려잡을 여자’라는 별명이 있던 사람이란다.
60이 넘도록 강인하기만 했던 그이가 했던 말은‘이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엄청난 무의미와 무력감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오래 견디던 고목일지라도 순간에도 무너질수 있다. 거대한 얼음을 깨어지게 하고 무너지게 하는 것이 어쩌면 포크레인 같은 커다란 장비가 아닐 수 있다.
바늘만한 어떤 에너지로 틈새를 만들어지면 얼음이 깨지고 무너질 수도 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그렇게 엄청난 큰 일들도 잘 견디고 인내를 이어왔지만 어느 순간 주목하지 못할 만큼 작은 바람이나 작은 일로 순간에 우르르 무너질 수 있다.
틈새,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긍정의 시작일수도 있는 처음의 에너지이기도 하고 큰 무너짐의 부정의 시작일수도 있겠다.
아주 작은 희망의 시작으로 간단한 한 끼의 밥이 하늘을 여는 그 처음일 수도 있다.
또 아주 유혹과 작은 부정의 에너지라도 그 끝은 엄청난 무너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오늘 우리를 살게 하는 작은 것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고 감사해야 한다.
때로는 바람 한 점 없는 더위속에 서늘한 한줄기 바람이 일어나면 그렇게 시원하고 반갑다.
비가 억수로 내리고 난 뒤에 듣는 벌레소리 같은 희망을 읽어낼 줄 아는 이는 복있는 사람이다. 벌레가 운다는 것은 비가 그만 그친다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들풀같은 작은 꽃의 일렁임, 그리고 아무 완장의 위력을 가지지 않는 지나가는 타인의 말한마디가 내게 주는 하늘의 세미한 음성일 수도 있다.
작은 징후에 깨어 있을 일이다. 오늘 나를 살리고 죽이는 힘이 작은 틈새로부터 시작됨을 잊지 말일이다.
누군가와 틈새가 벌어지면 너무 오래 두지 말일이다.
그 틈새가 녹슬면 더 이상 하나가 되지 못하고 영원한 타인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가족이거나 타인이거나 마음의 티끌을 오래두면 녹이 슬어버리고 무너지게 된다.
늘 잘하다가도 마지막에 판을 뒤엎어버리고 수를 잃어버리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은 물론 다른 이들에게도 큰 아픔과 슬픔, 고통을 준다.
단 하루, 짧은 시간이라도 지옥을 살지 말일이다.
나를 살리는 틈새와 나를 죽이는 틈새는 무엇일까!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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