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주)미래신문 대표이사

그렇게 폭염으로 시달리던 생명들이 입추의 바람을 타고 조금은 쉼을 얻을 수 있는 아침이었을까? 새벽을 열고 피어나는 꽃처럼 밝은 햇살이 하늘에 떠오를 때는 늘 새 하늘 새 빛의 순간이다. 

그 빛줄기가 숲속의 나뭇잎 하나 하나를 타고 발 앞에 떨어져 내림을 맞이하는 것도 신비다.
새벽이 빛과 함께 피어나는 그 신비한 순간은 누구에게는 영원을 맛보는 시간이다. 

그냥 나뭇잎에 불과한 잎사귀들도 빛의 밝음에 따라 꽃이 된다.
사람도 그렇다.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그렇게 빛이 되고 밝아질 수 있다. 

선선한 바람결의 순간이 그 새벽에 선물처럼 존재함을 느끼는 찰라의 행복.
아무리 어려운 인생도 잠시 타는 목마름을 쉬어갈 순간은 있음을 간과하며 절망하지 말일이다.

익을 듯 타오르는 더위에 옛날 어른들은 그런 새벽에 들에 나가 오히려 하루 일과를 거의 다 하곤 했다.  
어릴 때 부엌 뒷문을 열면 옆에는 우물가가 있었고 양지바른 가까이에 장독대가 있었다.

우물물을 한참 펌프로 퍼 올리면 시원한 물줄기가 올라오고 그 물을 받아서 시원하라고 먹을 거리를 담가 두었던 기억 이외에 냉장음식을 먹었던 일은 한 참 그 다음의 일이었다.

아버지가 입으셨던 모시 등걸 잠뱅이도 생각난다. 
꺼칠 꺼칠한 느낌의 숭숭 뚫린 옷을 입고 한 평생 농부로 지게대학을 나왔다고 말씀하시며 천직으로 여기시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늘 동지처럼 함께 일하셨다. 

가끔은 의견이 안 맞긴 하셨어도 그 뜨거운 여름날에도 조석으로 밭에 나가 땀 흘리며 일하시고 한참 더울 시간쯤에는 집으로 돌아오셔서 샘가로 가셨었다. 우물물 한 바가지를 머리에서부터 시원하게 서로 부어주시고는 대청마루에서 짧은 단잠을 청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즘의 더위사냥은 시원한 곳을 찾아 지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밖의 온도나 안의 온도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그런지 좋은 문명의 혜택이 많아도 몸은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부모시절에 비하면 참 고생 안하고 사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더 풍성한 것만은 아니다.
서러운 가난 속에서도 모든 작은 풀잎사귀와 이야기하고 주변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사랑했던 조상들이 누렸을 자연과 그 변화와의 하나 됨을 우리는 잘 모르기도 한다. 

어쩌면 야생의 그 모든 감각을 잃어버려 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자연의 변화에 대한 적응과 극복, 그 모든 것 속에 담긴 신비를 보지 못하는 것도 많다. 

모든 일, 그 어떤‘깊은 하나’를 겪어내는 동안 우리는 인생에서 아로새기고 가야할 문양이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가장 밑바닥을 경험하고도 일어서는 사람도 있다.

일주일이면 어김없이 만나는 모임의 한 멤버가 오랜만에 자신의 스토리를 열었다. 사업체는 있는데 일이 없던 3년동안 걷기만 했다고. 
오래전 그에게 그런 일이 있었던 줄 말하기 전까지는 정말 몰랐던 일이다. 다 지나가고 나니 그가 말해서 알았는데 이제까지 보았던 그 사람이 달라보였다. 

우리가 겪는 모든 것 속에는 신비가 있다. 오롯하게 겪을 일이라면 그 과정 속에 담긴 그 신비를 놓치지 말일이다. 때로는 옛일의 기억도 필요하면 오늘 가져와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모든 변화와 더불어 우리도 같이 순환하며 살아가야 할 생명이다. 
인생사 피하는 것을 넘어 더위와 추위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살아가듯이 최선의 노력과 어떤 소중한 시작이야 말로‘영원’그 자체이다.

과정에 있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마음의 소리와 소중한 시작에도 비겁하지 않았다는 자신을 스스로 비추는 거울이야 말로 진실한 삶 그 모든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노력해서 도달했다면 그것에 족할 줄 아는 것, 목표에 지나치게 목매일 필요는 없다.
순간 순간 하나의 빛으로 존재한다면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늘 세상사 가난도 슬픔도 죽음조차도 내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질병이나 과중한 일로 힘들고 지친 영혼이나 한 때의 과오로 어려운 일을 당한 삶이나 그 누구나 이 혹독한 더위가 물러갈 날이 있음을 바라볼 일이다.

하나의 잎사귀를 뚫고 온 빛줄기 하나가 내 발앞에 머무는 짧은 순간의 에너지를 영원처럼 만나면 그 옛날 야생의 건강한 유전자를 타고 왔던 우리의 생명력을 깨워 줄지도 모른다.

우리도 한 때는 야생이었던 생명이다.
지금, 야생을 잃어버리고 너무나 나약한 생명으로 고뇌하고 사는 지도 모른다.

문을 박차고 나갈 일이다. 이미 내면 안에 그토록 강인했던 생명력이 아직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없어도 제로는 아니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다. 자신의 임계점을 극복하고 다시 시작점으로 가자.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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