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봉 주)미래신문 대표이사

북성산 숲 자락에서 16년을 살았다. 
숲에서 살면  때로 속도를 따라잡기가 힘들다.

가끔 번화한 곳이나 시장에 나갔다가 얼른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만큼 이곳에 적응된 느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한다.

아시는 분이 한 번 이곳을 방문했다가리를 조금 근심어린 표정으로 살펴보시며 어서 빨리 이곳에서 내려가서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아직은 이런 곳에서 살 때는 아니지 않느냐고 하시면서.
우리를 너무 일찍 도시공동체로부터 멀어진 사람인 듯 생각하시는 어른의 표정이 가끔 떠오른다. 그런데 우리는 이곳에 살면서 부터 그래도 숨을 쉬고 산 세월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끔 번잡한 도시에 가면 오히려 신기한 듯 변화를 즐기고 오기도 한다.
하지만 잠시는 좋지만 계속 살라고 하면 손사레를 칠 것이다.

일이 있으면 밖으로 나가고 숨을 쉬기 위해서는 돌아오는 숲길을 걷는 수고는 그래서 당연하게 느낀다. 
손과 발로 느끼는 삶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지는 누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자신이 이른 새벽 힘차게 홰를 치듯이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두 다리에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걸어보면서 오늘의 컨디션을 알고 몸의 어디가 좀 문제를 호소하는지 알게 되면 스스로 주무르거나 움직여가며 조절할 수 있음도 배우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의 짐을 많이 줄여나가야 한다는 데 남편과 뜻을 같이한다.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에 트럭으로 몇 번이나 짐을 덜어내고 정착했는데 지금도 가끔 짐을 덜어내야 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다.

어제도 이른 아침부터 언제부터인지 우리와 함께 있게 된 물건들 중의 일부를 떠나보내는 일을 했다. 한가지이면 충분한데 같은 종류가 어느 사이 먼지 쌓이듯이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보는 삶이야 말로 진정 쉽지는 않지만 휩쓸려가며 사는 삶이 아닌 자유한  삶이라고 생각해 왔다.
마당가에 무성히 자라나는 것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래서 먹을 수 있는 풀은 대체로 뜯어 간장과 들기름 한 스푼 넣어 조물조물해서 먹는데 심심한 맛이 그만이다. 행여 남은 것도 쉬이 상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야생이 얼마나 생명력이 강한지 느낀다.

60년대 태생으로 농촌을 배경으로 숲과 들을 보고 자란 우리세대는 자연이 익숙한 사람들이 분명하다. 그렇게 농촌을 뒤로 하고 서울로 서울로 향해 나아갔는데 어느 지점까지 와보니 다시 푸른 색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가장 행복한 시간은 긴장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만족한 시간을 영위하는 것이 전부일 만큼 이런 삶의 속도가 적당한 이들도 있다.  
속도가 빨라지면 생각이 짧아진다고 한다. 

이곳은 언제나 하나 하나 저마다의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를 반복하는 모습을 마주보며 산다. 누구라 할 것없이 저마다의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난 풀잎들이 있다.

6년의 세월이 가는 동안 개복숭아씨가 떨어져 다시 성성한 나무로 자라고 베어졌던 그루터기에서도 새로운 가지가 나와 자리를 바로 잡는 자연의 흐름이 이상하지 않다. 모두 가만히 놔두면 그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며 어우러지는 풀과 나무들은 궁색함도 어색함도 없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농사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살아왔던 사람들인데 이곳 마당가에 텃밭에서 한 잎 두 잎 뜯어서 생 된장 찍어 쌈을 싸 먹는 맛에 친근해진지 오래이다.

올해는 허리가 오래 아파온 남편이 더 많은 땅에 돼지감자를 비롯해 여러 씨앗들을 심어 놓았는데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건 어느 순간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무엇인가를 속성으로 빠르게 이끌어가는 대신 저절로 익어가는 시간을 기다리고 서서히 내려놓는 것을 배우는 일, 세상에 그토록 서둘러서 가야할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아직도 더 깊은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곳의 집은 거의 그의 손으로 울퉁불퉁 지은 집이라 세련되지도 않고 필요를 느낄 때마다 이어붙인 엉성한 곳이지만 더 한적한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  

우리를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소유와 축적으로 부터는 가능하지 않다.
언제나 죽는 날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끊어지지 않는 희망과 노력일 뿐.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