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미래신문 대표이사

지금까지 늘 잘 살고 있었다. 겨울에는 쉬었다가 새 봄이 되어서 녀석들이 다시 하얀 오리알을 낳아주는 것이 신통하고 재미도 있었다. 몽글 몽글 봄쑥이 나오고 진달래 몽우리가 조금씩 열리며 그토록 예쁜 분홍색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이른 아침이었다.  

사람 발 소리를 들으면 더 큰 소리로 먹이를 달라고 꽥 꽥 큰 소리를 내던 오리들이 웬지 조용한지라 다가가보니 아풀싸! 누구의 짓인지 오리 두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오소리의 짓이었을까? 단지 짐작일 뿐, 누가 한 짓인지는 모를 일로 오리장은 수난을 당했다.
사투를 벌였던 흔적인 양 잔뜩 털이 뽑힌 채 생명을 빼앗긴 하얀 오리와 부상당한 갈색오리는 서로 몸을 기대고 있었다. 천 날이 괜찮았는데 한 순간 오리들은 생명이 왔다 갔다 한 것이다.

장날 사다가 기르기 시작했던 오리는 돌아보니 어느 사이 4년 이상을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는 당연한 생명이었는데 밤사이 한 순간에 일이 일어난 모양이다.

일주일 여 만에 등에 큰 상처가 나서 살아날 성 싶지 않았던 오리는 신기하게 기력을 회복했다. 간신히 물 한 모금을 겨우 삼킬 정도로 부상을 입었었는데 아직은 절룩거리며 상처를 딛고 일어나 먹이를 찾아 먹는다.

워낙 작은 눈이지만 마주이야기라도 하고 싶다. 장하다고.
어느 녀석인지 몰라도 살아남은 네 마리의 오리 가운데 하루 한 알씩 다시 뽀얀 알을 낳아주는 일상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의 침범으로부터 살아남은 오리들을 바라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참 애처롭다. 정이 들면 키우던 짐승도 그렇다.

처음에는 “우리 오리 길러서 잡아먹자”는 소리를 하면서 키우던 녀석들인데 키우다보니 수를 다할 때까지 같이 사는 생명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도 오리를 요리할 수 있는 이도 없고 시중의 훈제 오리는 먹으면서도 기르는 오리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절뚝이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지만 갈색오리의 살려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며 물 한 바가지라도 더 주게 된다.

살아남아서 만나는 것이 고맙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도 어찌보면 오늘 까지 살아남아서 만나는 참 고마운 이들이다.  
우리가 만나고자 하는 희망이라는 것도 때로는 위험 속에서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죽을 뻔 했던 사람은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끈질기게 붙잡아야 하는 끈인지 잘 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놓아야 할 것과 마지막까지 붙잡아야 할 것을 아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놓아야 할 것과 붙잡고 가야 할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 가지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생명을 살아남게 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가장 위험한 고비를 넘기며 더 질겨지는 생명력, 그것이 우리의 힘이요 희망이다. 하나의 어려움을 겪고 일어서면 다른 어려움을 마주해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어려움을 겪어내면서 더 단단해지고 모자람 속에서도 더 넉넉하게 늘려가며 살아가는 힘이 바로 꼭 필요한 우리들의 지구력이 아닐까!
우리가 매순간 위험을 느끼는 이 나라에 사는 가운데에서도 의미로운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이야말로 최고의 고단함 그 자체이다.

근심과 이런 저런 한 숨 속에서도 봄 쑥이 솟아나고 민들레와 소리쟁이가 파란 싹을 내밀고 있다. 참나물도 뾰족하게 머리를 내밀고 있다.
오리들의 꽥꽥 소리도 언젠가는 늙어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날이 새면 아직도 소화력 좋게 먹이를 달라고 주인의 발소리에 귀가 밝은 오리들이 반갑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이기고 지금까지 살아남아준 생명이 고맙다.

때로는 혼잣말처럼 그들에게 말을 걸 때도 있다.  
위험하고 각박한 일들이 우리를 위협하지만 그래도 아침이 되고 밤이 되는 순리를 벗 삼아 끝가지 인내할 일이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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